『지난 40여년 동안 나는 살 가치도 없고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내 본성에 맞서 싸우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달리기를 발견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달릴 때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어느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의식이 마음 속에서 느껴지지만 육체적, 정신적 무기력에 익숙해져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가 바로 달리기를 시작할 때이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달리는 방법, 기술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존재"라는 다소 모호하고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말을 "달리기"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행동을 나타내는 말과 결합하여 삶 전체를 성찰하고 변화시키고 의미를 부여한다.
5km도 제대로 뛰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10km는 40분에 달릴 수 있고, 그보다 먼 거리도 뛸 수 있고 뛰고 나서도 별로 지치지 않으며 땀 범벅이지만 웃고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이지 테크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참된 목표는 몸 가꾸기이지 아프지 않겠다거나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내 진정한 목표는 참된 높이까지 이르는 것이다. 내 진정한 원래 내가 지녔던 존엄을 되찾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살기 위해 달린다. 거짓말이 아니다.』
공교롭게 저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내용의 글을 "본투런 Born to Run -크리스토퍼 맥두걸 저"에서 보았다
"우쭐거리는 것 같아서 이런 얘기는 두 번 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울트라러닝을 시작했어요. · · · · · · ·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 더 좋은 사람, 더 평화로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항상 있어요. "본투런" 울트라러너 Jehn Shelton의 말 중에서"
나는 앞으로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