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정호승 시인이 시집을 냈다. 정호승은 이제 일흔이 된 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기념하는 의미로 낸 시집이라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서평단에 당첨되어서 그 기념비적인 시집을 따끈따끈하게 전달받아서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 시집을 배송받고나서 나는 이것을 더욱 값지게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했다. 아침에 잠을 잘 깨게 하고 하루를 더욱 상쾌하게 시작하기 위해서 시집에 있는 시를 한두편 정도 낭송하며 녹음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괜찮게 느껴지는 시를 관심이 있을만한 몇몇 친구들과 종종 공유하기로 했다.
3.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두 편의 시가 있다. <먼지의 꿈>과 <걸림돌>이다. 게다가 녹음도 생각보다 잘 살려서 한 것 같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한 날에 함께한 시이기도 해서 초심자의 재미가 덕을 보게 한 것 같다. 아침이라서 목소리가 가라앉은 채로 그냥저냥 녹음을 했는데 의도치 않게 그것이 효과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간에 위 사진들처럼 칭찬받아서 좋다.
4. 시의 내용들도 감명 깊다. 일단 <먼지의 꿈>은 마치 하늘로부터 땅에 직접 내려와 인간과 더불어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셔서 연약한 자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내려온 임마누엘(Immanuel) 예수의 모습 말이다. 공기 위에 둥둥 떠다니며 돌아다니는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먼지는 한없이 낮은 땅 그 자체에 들러붙는 흙이 되어서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존재를 창조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양분으로 희생해서 생명력을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을 알아봐주는 이는 별로 없다. 그래도 먼지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희망이 되어주고자 한다. 참으로 아가페(agape)적인 사랑이다! 바로 이러한 사랑을 하고 싶어서 먼지는 '더 낮은 데까지 내려앉아' 흙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닐까.
5. <걸림돌>은 에픽테토스같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통찰이 떠오르는 시였다. 스토아학파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외부 세계의 현상들에 대해서 집착이나 미련을 두지 말고 내면 세계에 초연하게 집중하며 그 안에서 평정을 찾을 것을 강조하는 철학 사조이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통찰은 현대의 심리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서 인지행동치료(CBT)라는 기법이 탄생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했다. 인지행동치료는 스토아학파와 비슷하게 내담자에게 내면 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 방법은 더욱 체계적으로 정교화되어서 내담자의 인지적 오류를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이다. 이는 불교에서 무명(無明)으로 인한 집착때문에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팔정도를 이야기하는 내용과도 비슷하게 맞닿아있다. 혹시 '걸림돌'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만히 있던 걸림돌에 넘어진 내가 괜히 그것에게 나를 가로막았다고 화풀이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걸림돌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내 프레임의 맹점 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었을까.
6. 시집은 전반적으로 후회와 상실을 겪어가며 그것을 초연하게 극복하려 하지만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정호승의 삶이 그러했던 것 같다. 아니, 우리네 삶 각각에 조금씩은 그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인생 전체가 '화재'가 난 것처럼 고통받으며 계속 불을 끄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엔 불나방처럼 불 속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정호승은 바로 인생의 그러한 면을 잘 잡아내어서 시적인 언어로써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시집을 "불교적 직관과 기독교적 묵상과 도교적 달관”이라고 짧게 정리한 이숭원의 해설이 참 와닿는다. 정호승이 시집에서 '로즈버드'처럼 계속해서 등장시키는 새의 모습은 끝내 닿을까 말까한 그의 이상향이다. 가능할 지도 모르겠고 쉽진 않겠지만, 그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한 모습으로 훨훨 날아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