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서적이 소개되고 나올 때마다 성별에 따른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까닭은 먼저 선진국의 노동환경과 한국의 노동환경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젠더 간의 격차에 대한 통찰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물건, 노동도구 등의 디폴트가 남성의 체형을 위주로 제작되었다는 불만은 충분히 남성이어도 이해할 수 있는 불만이다. 남성도 키가 작고 신체가 작은 남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책에서 이런 식의 논지를 전개하는 방법이나 주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은 '사람' 등의 다양한 도구나 노동환경을 위한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성에게, 혹은 여성이라서 불리하다고만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을 옹호하기만 하는 것에서 멈추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이겠지만, 페미니즘(여성주의)라는 문자 그대로의 영역에서 멈추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이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주장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러마 그들은 중요한 순간, 중요한 지점마다 남성들이 겪는 문제나 아픔에 대해서 외면한다. 이 책이 캐나다의 노동환경을 비판하면서 쓴 책이지만, 한국의 남성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의 노동환경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의 95% 이상, 즉 거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러운 업종에서 근무하면서 죽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성 중심의 근로현장이 여성 노동자에게 덜 편안하고, 덜 안전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남성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여성들이 흔히 말하는 남초의 영역에 더 많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부분의 개선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성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던 페미니스들은 분명히 남성들이 겪는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없는 듯한 행위를 반복한다. 남성들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행위는 자신들도 남성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평등해질수록 젠더간의 구분은 약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분리와 구분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알라딘 편집장이 추천하는 책을 왜 고객들이 알아야 하는 지 의문이다. 알라딘이 선정하는 책이 특정 세대의 특정 시각 만을 대변하는 기류를 예전부터 느껴왔다. 물론 그런 책이 현재의 출판 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 역시 맞지만, 그런 시장에서 이어지는 타산적인 추천이라면 적어도 고객이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