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곡비가 된 한 남자가 밤길을 걸으면서 사진으로 운다. 그의 밤은 처연하면서 따뜻하다. 다치거나 부서졌거나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잔함으로 오롯하다. 마음을 건드리는 미사여구나 감정과잉 없이 깊은 곳을 찌른다. 소중한 뭔가를, 누군가를 잃어버린 그의 사진과 글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것들은 친밀해서 나에게로 와선 내 이야기가 된다.

개들의 묘지
어릴 때에는 개들이 자주 죽었습니다. 애최 목숨이 질기지 못한 것들, 맞아서 죽고 치여서 죽고 얼어서 죽었습니다.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들, 모두 내가 거두어 뒤꼍 자작나무 아래 묻어주었습니다. 밤중에 그 나무 옆을 지날 때면 개 짖는 소리 왕왕 들리곤 하였습니다.

저 위에 별 하나 박겠다 했지
저 위에
별 하나 박겠다 했지.
시월이었지.
바닷가였지.
심지에 불을 붙였지.
불꽃은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솟구쳤지.
비명도 환호도 없이
석류알 몇 개 허공에 터져버렸지.
문득 잡힌 손이 타들어갔지.
거뭇한 눈동자에 별 하나 떴지.
다가가 이름을 부르자
그 별은 금세 졌지.



우리를 다녀간 감(感)에 대하여
예감(豫感)
친밀감(親密感)
자신감(自信感)
열등감(劣等感)
비감(悲感)
무감(無感)



당신의 무늬
빗물이 이랑 지어 흐르는 유리창에
가만 손바닥을 댄다.
나의 체온이 그려놓은 무늬는
반대편 허공에서 마주 댄 당신의 손이다.

너도 세입자 나도 세입자
아침에 출근 준비 하다 보니 창밖 에어컨 실외기 쪽에 비둘기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봄이 오려나. 집 보러 온 거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 꼼꼼하게 이곳저곳 살피는 품이 이사깨나 해본 듯. 어차피 나도 세입자 너도 세입자. 야박하게 굴지 않을 생각이다.
이 책은 분명 에세이지만 충분히 이야기적이고 또 독립적이다. 읽고 나면 슬픔과 상실감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 든다. 최루성 감성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 깊고 그보다 느리고 그보다 은은하다.
그의 사진 속으로 들어온 대상들은 하나 같이 일상적이다. 숟가락, 수족관 생물, 공사장, 노숙자, 고양이, 개, 개구리, 부러진 나뭇가지, 아이들, 심지어 쓰레기까지. 그런 대상들을 우리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카메라로 다 만나러 다닌다. 특이한 광경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조각을 오려다 붙인 듯한 느낌이다. 그의 이야기와 만나면 그것들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의미가 좀 더 풍성해지는 느낌. 헤르츠티어는 좋은 눈을 가진 작가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아래 글은 유독 더 감동적이었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신념 같은 것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한쪽 눈으로 걷기
어느 날 밤 나는 한쪽 눈으로 걷는다.
한쪽 눈으로 봐도 흐릿하고
감긴 눈으로 봐도 감감한
그림자들 일별하러 걷는다.
운 좋게 두 눈이 마주쳤다 해도
우리에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한쪽 눈은 사이를 응시하는 눈,
깊이를 재는 눈,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눈.
그 눈은 두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있을 땐 있음을 보고
없을 땐 없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