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이나 시, 에세이 등과 같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위 고전이라 불리우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작품의 경우 하나의 작품일지라도 판본에 따라 혹은 새로운 시대적 배경 및 분위기에 따라 여러 역자들의 번역 또는 편저 등으로 출판이 되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비교해가며 골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원래 우리말로 된 작품이 아닌 이상, 원저자 이외에 유명 교수, 학자, 연구원, 전문 번역가를 비롯하여 00 대기업 임원 역임 등의 직함을 가진 분들 등 여러 부류의 역자들을 함께 만나게 된다. 하나의 원문을 놓고 시대에 따라,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고 또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기에, 어느 누구의 견해를 좇을 지 역시 독자의 몫이며 한편으로는 독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 훌륭한 역자들의 덕분에 해석본만 읽어도 일반인으로서 원전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동양의 고전에 속하는 책들을 탐독하다보면 '원문을 통해 직접 원저자와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해당 언어를 구사한다거나 한문을 다소 익힌 세대의 경우라면 더더욱 이러한 충동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취미로 즐기는 독서이고 학습이다 보니 항상 아쉬운 것은 명쾌하게 의미나 구조가 드러나지 않는 문장이나 구절을 만났을때 어디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다만 여러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보고는 결국 머릿속에 모호한 의미와 형태로 그냥 그렇게 묻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본인은 중국어 및 한문관련 국내외의 여러가지 공구서들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새로 개정판이 나온 김원중 선생의 한문해석 사전에 또 다른 기대를 걸어 보고 싶은 마음에 새로이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에 관심을 갖고 구매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의 선택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약 보름간 옆에 두고 사용해 본 본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몇 자 적어본다.
후기에 앞서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은 이미 오래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여러 출판사들을 거치며 몇 차례 개정이 되어 나오고 있다. 그 동안의 평가중에는 편저자가 중국에서 출판된 모 허사사전을 아주 통째로 베꼈다, 학부생이 그냥 저냥 하다 만 것 같은 오류를 담고 있는 해석이 군데 군데 적지 않다, 개정판이 나올때마다 짜깁기 식의 예문 추가로 인해 일관성이 떨어진다 등등 인터넷상에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다. 특히 연세대학교에서 편찬한 허사대사전과 많은 비교가 되기도 한다. 본인은 그동안 연세대학교 허사대사전을 사용해왔기에 두개 사전을 비교한 리뷰도 가능하나, 해석상의 오류라든지, 어느 책이 어떤 면에서 더 낫다는 등의 평가를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신의 실력을 알기에 이번 리뷰에서는 가급적 새로 구입한 한문해석사전의 편의성과 아쉬운 점 등을 위주로 다루고자 한다.
여러가지 특장점 중에서 본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첫째로 일반 사전과는 상당히 다른,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의 편집과 구성이다. 특히 책 앞머리의 일러두기 4번 항목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실사의 의미를 겸하는 허사는 [참고]란을 두어 해당 허사의 용법과 비교 대조함으로써 해석상의 혼동을 막고자 했다."라는 부분이 매우 편리하다.
일례를 들어 庶(무리 서) 자를 찾아 보면, 부사로 ①'바라건대'와 ②'아마도' 두가지 의미의 다양한 예문과 함께 주된 용례가 설명되고 그 다음에 [참고]란에 해당 글자의 실사용법을 같이 설명하고 있다.

< 庶(무리 서)자 설명>

<참고란의 실례>
위의 사진과 같이 참고란에 실사로서의 의미 및 용례를 같이 둠으로써 문장해석을 위한 기능적 의미를 확인하고자 특정 글자를 찾을 때, 소위 옥편이라고도 불리우는 일반 자전과 허사사전 두개중 어느 것을 먼저 찾아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물론 경우에 따라 자전과 허사사전을 둘 다 봐야 하는 때도 많지만...) 즉, 일정부분 자전의 기능을 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연세대학교에서 나온 허사대사전과의 차별성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둘째, 김원중 선생의 우리말 해석 문장은 대체로 직역에 가깝다. 그리고 최대한 원문의 글자순서를 지켜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해석 스타일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본다. 본인은 그의 책을 여러권 읽어 보았기에 그의 문장 스타일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 때문일 수 도 있으나, 본인과 같이 아직 한문 해독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 전체 맥락을 따지기 전에 우선적으로 축자적 해석을 위주로 하다보니 이런 해석 스타일이 한문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셋째, 예문 내에서도 설명하고 있는 허사 글자와 그 글자의 우리말 해석부분만 다른 색과 굵은 글씨체를 사용하여 매우 눈에 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예문속에서 해당 허사의 용법을 빠르게 훑어 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책의 모양새를 들 수 있다. 성경책이나 일반 사전에 사용되는 얇디 얇은 종이가 아닌 양질의 고급 종이를 사용하여 아주 매끄럽고 형광펜이나 볼펜등으로 표시를 하거나 필기를 하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다른 사전류들이 한 페이지를 좌우 이분할 하고 작은 크기의 폰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각각의 페이지가 통으로 되어 있으며, 일반 책자의 글자크기 정도로 폰트가 크게 인쇄되어 있어, 편집이 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어, 노안으로 인해 사전을 보기 힘든 분들에게는 특히나 매우 만족스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위와 같이 여러가지 장점들이 많지만 불만족스러운 부분 또한 적지 않다. 높은 가격과 책의 장정이 특히 그렇다. 정가 69,000원이라는 가격은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번 구매하면 아주 오랜 기간 사용하게 될 공구서가 이 정도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죽장정을 사용한 것도 아니며, 또한 케이스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얇은 종이 커버 한장 씌운 일반 양장본 도서와 같은 수준이다. 결국 맨위의 사진처럼 별도의 포장 비닐을 구매하여 씌워서 사용중이다. 이 점은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휴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집이나 사무실에 두고 필요시 가끔 꺼내어 보는 사용자라면 몰라도, 학생들의 경우 1,400여 페이지에 해당하는 두꺼운 양장본 서적을 케이스도 없이 가방에 넣고 다니며 사용하기에는 대단히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일반 사전류와 달리 인문서적처럼 다가가고자 하는 컨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개정판 이전글항아리 때부터 장정에 대한 이와 같은 구매자들의 반응이 있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개정판에서도 역시 반영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공구서의 경우 어느 책을 선택하느냐도 매우 중요하지만 결국은 구매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용이 크게 달라진다고 본다. 가격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본인의 경우 그 내용이 만족스럽고, 눈에 보기 편한 관계로 곁에 두고 오래도록 함께 하게 될 공구서라 생각한다. 또한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다음번 개정때는 내용면에서도 형식면에서도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바래 본다.
※ 본 리뷰는 편저자와 일면식도 없으며, 협찬같은 거 전혀 없는, 순수하게 개인의 소중한 용돈으로 책을 구매하여 사용중에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후기로, 구매를 고려중인 분들이라면 본 리뷰의 내용을 참고하여 가급적 오프라인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후 자신의 구매용도에 맞는지 신중하게 고려하여 결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