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고는 이번엔 현대의 중국인 학자 입장에서 쓴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 노자강의를 골랐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는 단어, 표현들이 너무 많아 집중하기 어렵더군요. 예를 들어 현대중국어에서 '启发'라고 하면 우리말에서 많이 쓰이는 자기계발 등의 계발과는 많이 다르게 주로 ''깨우침', '깨달음' 또는 '영감' 등을 의미하는데 이걸 그냥 '계발' 이라고 옮겨 놓으셨더라구요. 그래서 누구 누구에게서 계발이 있었다 혹은 계발을 받았다 등의 문장은 너무 어색하고 문맥을 흐트려 놓아 독서를 심하게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文化程度'는 '학력수준'을 뜻하는 데도 불구하고 글자 그대로 '문화정도'라고 번역을 하다니...현대중국어를 조금만 배워도 절대 이렇게 번역하지 않습니다.
노자철학이 원래 그 내용 자체가 심오하여,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백가강단의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책으로 펴냈는데, 이번 경우와 같이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 어떤 독자는 이를 번역에 기인한 것으로 알지 못하고 원문 내용이 어렵다거나 본인과 맞지 않는 책 또는 철학사상으로 치부해버릴 가능성도 발생합니다.
손성하 이분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으셨다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분이 자신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한 철학저서를 쓴다면 모를까 번역가로서는 글쎄요... 김영사에서 번역가 섭외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출간된 시점이 이미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요. 백가강단의 훌륭한 강의들을 다양한 책으로 만들어주신 김영사에서 시리즈로 내주신 책들중 최악입니다. '00강의'라는 이름으로 그동안의 이중톈, 왕리췬 등 명사분들의 명강의를 우리말로 옮긴 좋은 책 시리즈라는 이미지가 이 책 하나로 끊긴 느낌입니다.
참고로 노자관련하여 많이 공부하신 다른 분이 개인 블로그에 올리신 글중에 이 책의 중국어 원본인 老子與百姓生活과 번역본인 이책 노자강의를 비교한 내용이 있습니다. 도덕경 원문번역 및 현대 백화문번역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며, 그 논거들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