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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r
  • [전자책] 릴케 단편선 - 문예 세계문학선 121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4,000원 (200)
  • 2016-03-30
  • : 294

  "정말 이상합니다. 이곳의 옛 궁전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토로해줄 때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건물에는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추억을 우리 자신도 그들과 나누어 가지고 온 듯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은 말씀이에요. 특히 이런 점에서 동감이에요. 어릴 때 이곳에 없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말하자면 이런 거에요. 좁은 거리나 정원 같은 데 있을 때, 저는 곧잘 누군가를 살며시 불러 세우고 이런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어렸을 때 저는 여기서 늘 놀았지요.'라고. 그리고 또 '이 교회에 기도하러 왔었지요'라든가. '이 그림을 보러......'라든가 그것이 사실은 모두 거짓말이거든요."

 

- 대화

 

 

 

  "어린 시절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 독립된 하나의 왕국이에요. 왕이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추방되어야만 할까요? 왜 이 나라에서 나이를 먹고 성숙할 수가 없을까요? ...... 왜 남들이 믿고 있는 것과 타협을 해야 할까요? 순진하고 굳건한 어린이의 신뢰감에서 나오는 것보다도 그것이 더 진리라는 말인가요? 저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어요. 그 무렵에는 무엇이든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있었어요.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지는 않았어요. 모든 것이 평등했지요. 모든 것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숙명적일 수 있었어요. 밤에 날아와서, 제가 좋아하는 나무에 검은 그림자처럼 근엄하게 앉아있던 새 한 마리, 정원 모양을 바꿔놓고 온갖 초록에 그늘과 빛을 주던 여름 소나기, 누가 꺾어놓았는지 꽃 한 송이가 끼워져 있던 책, 흔히 볼 수 없는, 무슨 의미가 있을 것같이 생긴 작은 차돌멩이. 이 모두가 어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고, 위대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어느 하나에 닿아도 죽을 것 같았어요......"

 

- 마지막 사람들

 

 

 

  "인생이란 아득하게 먼 것이지만 그 속에 있는 것은 아주 적어요. 영원한 것이 결국 하나의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난 불안해지고 지쳐버립니다. 어렸을 때 나는 이탈리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잘 기억하진 못하나, 여하튼 이탈리아의 시골에서 길을 가던 도중에 농부에게 '마을까지 얼마쯤 남았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반 시간쯤 남았지'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다음번에 만난 농부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대답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루 종일 걸었건만 마을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생도 이것과 같아요. 그러나 꿈속에서는 뭐든지 가까이 있거든요. 그래서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래 꿈에 맞도록 만들어졌으며, 삶을 위한 기관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물고기인 주제에 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짓을 해서 어떻게 한다는 것이죠."

 

- 에발트 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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