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도 살 장
혹은
소 년 십 자 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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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오래전 전투력을 상실한
미국 보병 정찰대원으로서, 전쟁 포로로서,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부르는
독일의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했고,
또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행접시를 보낸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이야기들을
약간 전신문체적이고
정신분열증적인 방식으로 다룬 소설이다.
평화를.
하....이걸 뭐라 말해야 되지?
만약 이 책이 재미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감스럽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며 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블랙 코미디라며?
하지만 내가 보기엔 코미디가 없던데?
나는 이 책의 초반에 거부감이 극심했다.
내가 알던 "전쟁의 비극"을 다룬 책들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1장부터 등장하는 작가 본인이 전쟁의 참상과
폭격 현장의 처참함 등을 생생하게 전달해줄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2장부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빌리 필그림이라는 캐릭터나 트랄파마도어 행성,
그리고 시간의 개념 같은 것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고 결국 화나게 만들었다.
특히 빌리 필그림의 무능한 모습과 현실을 외면한 채
도망치려고만 하는 태도가 나에게 불쾌감을 줬었다.
결국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감정은 헝클어져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기로 했다.
알라딘 100자평과 마이리뷰를 보고
나와 같은 상황에서 책을 놓아버린 사람도 있었고
꾹꾹 참으며 억지로 읽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를 통해 나는 이 책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꾸며낸 생생한 이야기만 접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폭격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겪은 후
작가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가 그 안의 잠재 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우와 함께 용기 내어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정작 참상에 대한 묘사는 후반부에 잠깐 언급된다.
- 나는 이것조차 마음 아팠다.
꺼내서 모든 이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고
꺼내도 상관 없어진 시대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봉인되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감히 건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굳어버린 기억 아니었을까.
나 역시 누군가처럼 작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난 트랄파마도어인의 등장과 빌리 필그림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그 후의 그의 행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어렵고
내가 소장하기도 어렵고
기억에선 절대 지워지지 않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처리하는 방법이 내가 쓰는 방법과 같아서
너무 소름끼쳤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 이딴 방법으로 현실에서 도망치는 줄 알았다.
헌데 이런 책이라니!!
이 책은 지독한 은유와 치열한 단어 배치로
빌리 필그림은 전쟁이 끝나도 전쟁이 이어지는 것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얼마만큼 아픈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는 점심을 먹은 뒤 낮잠을 자러 집으러 갔다. 그는 매일 낮잠을 자라는
의사의 명령을 받았다. 의사는 그게 빌리가 겪는 고충을 덜어줄거라
기대했다. 빌리 필그림은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너무 자주, 자기도 모르게
울곤 했다. 누구에게도 들킨 적은 없었다. 오직 의사만 알았다.
빌리는 지극히 조용하게 울었으며, 물기가 많이 번지지도 않았다.
P83
이 책은 스스로 원해서...
그리고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거나
아니면 그런 것을 유추할 줄 알아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난 여태까지 좋은 책을 권한다는 생각으로 리뷰를 써왔지만
이번 만큼은 그냥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극히 일부만 말하기로 했다.
내 글 실력으론 감히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모두
글로 적을 수 없다.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 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
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예를 들어 우리가 쭉 뻗은 로키산
맥을 한눈에 볼 수 있듯이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순간이 영
원하다는 것을 봐서 알고 있고,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어떤 순간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마치 줄로 엮인 구슬처럼 어떤 순간에 다음 순간이 따르고 그 순간이 흘
러가면 그것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
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P43
기밀실에는 안을 살필 수 있는 구멍이 두 개 있었다. -노란 눈이 거기 달라붙어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는 스피커가 있었다. 트랄파마도어인은 후두가 없었다.
그들은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들은 컴퓨터, 또 모든 지구인의 말소리
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종의 전기 기관을 이용하여 빌리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탑승을 환영합니다, 필그림 씨." 스피커가 말했다. "질문 있나요?"
빌리는 입술을 핥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물었다. "왜 나죠?"
"정말 지구인다운 질문이군요, 필그림 씨. 왜 당신이냐고? 말이 나와서 이야기
인데 왜 우리여야 할까요? 왜 뭐여야 할까요? 그냥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호박에 들어 있는 벌레를 본 적 있나요?"
"네." 빌리는 사실 사무실에 문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안에 무당벌레 세 마리
가 들어있는, 광택이 나는 방울 모양의 호박이었다.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P102
"여기가 어디지?"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지금은 다른 호박 방울에 갇혀 있습니다, 필그림 씨,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지구에서 5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고, 몇백
년이 아니라 몇 시간 만에 트랄파마도어로 우리를 데려다줄 시간 왜곡으로 향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 어쩌다 내가 여기로 오게 된 거지요?"
"그것을 당신에게 설명하려면 다른 지구인이 필요합니다. 지구인들은 설명을 잘
하더군요.왜 이 사건이 이런 식으로 구조가 잡혀 있는지 설명하고, 또 어떻게 어
떤 일을 이루거나 피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는 트랄파마도어 사람
이고, 당신이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보듯이 모든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이죠.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리 알려줄 수도 없
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는 거죠. 그걸 한순간 한순간씩 떼어놓
고 보면, 우리 모두가, 내가 전해도 말했듯이, 호박 속에 갇힌 벌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자유의지라는 걸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지구인을 연구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나는 우주의 유인 행성 서른한 곳을 찾
아가보았고, 그 외에도 백 개 행성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를 이야기 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이 말했다.
P113
"그렇다면-" 빌리가 더듬듯이 말했다.
"지구상의 전쟁을 막는다는 생각도 멍청한 거겠네요."
"물론이죠."
"하지만 이곳이 평화로운 행성이란 건 사실 아닙니까."
"오늘은 그렇죠. 하지만 다른 날에는 당신이 보거나 읽었던 어느 전쟁 못지않게 끔
찍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안 보고
말지요. 무시해버립니다. 우리는 기분 좋은 순간들을 보면서 영원한 시간을 보냅니
다. -동물원의 오늘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멋진 순간 아닌가요?"
"그렇죠."
"그게 지구인이 배울 수도 있는 점 한 가지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요.
끔찍한 시간은 무시해라. 좋은 시간에 집중해라."
P151
"그럴 수밖에 없었소." 럼포드가 빌리에게 말했다. 드레스덴 파괴 이야기였다.
"압니다." 빌리가 말했다.
"그게 전쟁이오."
"압니다. 나는 불평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지상은 틀림없이 지옥이었겠지."
"그랬습니다."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시오."
"그러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겠지, 거기 지상에서는 말이오."
"괜찮았습니다." 빌리가 말했다.
"다 괜찮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나는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웠습니다."
P246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