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여성이고
오랫동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불만과 후회 등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다른 가능성을 줄지도 모른다.
나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작가의 어머니 모습은
나의 어머니와 매우 겹쳐져 있다.
심지어 노년의 모습까지도...
그래서 난 이 책의 말미에 작가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를 철저하게 부정하며 자라지만, 결국은 그 어머니를 닮아버리는 것.
딸이 바라보는 어머니(즉, 이미 나이를 먹고 출산을 경험한 여성)는
단지 성별만 같은 여성일 뿐,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같은 시기를 지나온 같은 성별의 여성이기에
자신을 그 누구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심지어 어떻게 행동할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정이란 공간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
어머니와 딸로 맺어진 관계라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점 때문에 반대편의 감정도 같이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제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헤매고 헤매다 도달하게 되는 곳.
또는 그렇게 헤매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이 책이지 싶다.
수 십억 인류 중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뜨거워지는 머리와 답답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식히고 한 숨 고를 여유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헌데 책이 너무 좀 이상하다.
오타도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보인다.
P50 의자들끼리 마구 부딪게 했다.
P51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P53 어머니가 약간 명에게 커피 열 봉지를 판다면> 등등
(<어머니가 약간 명에게 아페리티프 세 잔을 판다면>이라는 또 다른 예는,
오타인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인지는 모르겠다.
책이 전체적으로 읽기 어렵다.
잘 읽혀지지 않는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 다음엔 절망했다.
그 동안 매끄럽게 읽혀지는 일본 소설에 찌든 나머지
내 뇌의 특정 기능이 퇴화 또는 소실된 게 아닐까 싶었다.
가령 예를 들면...
경제 위기로 얼룩진 암울한 시기, 파업, <마침내 노동자를 위해 존재했던> 사람
블룸Blumm, 왔다가는 식량으로 가방을 채워서 돌아가는 그녀 쪽 친척들(그녀는
서슴없이 식량들을 내줬는데, 궁지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 자신 아니었는가?),
그들을 위해 방마다 깔아 놨던 매트리스, <다른 쪽> 친척들과의 불화가 이어졌다.
고통. 그들의 어린 딸은 예민했고 쾌활했다.
시집 같은 사이즈에 110 페이지 짜리 얇은 책이지만
중후반을 넘어가면 이 책 특유의 서술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내가 적응을 한 건지...
작가가 후반부로 갈수록 서술을 좀 더 매끄럽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를 읽을 때 즈음,
읽기 어려웠던 앞 부분의 서술 방식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의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은 현재로부터 가장 먼 과거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써야 했을 거라 짐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아닌 삶을 꾸며 냈다.
파리에 가기도 했고, 금붕어 한 마리를 사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을 남편의 무덤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작가는 이 책의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유년 시절의 젊고 활력있던 엄마와
치매에 걸린 늙은 어머니의 모습을 연결시켜
한 여성의 삶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이 책 전체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는 저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자기가 자란대로 배운대로 아는대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세상이지 아이의 세상이 아닌 것.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정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구와 맺어져서 누구를 낳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다는 것.
나는 이 책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근데 내가 언급한 오타(?)는 좀 수정해서 다시 출판하면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