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창고_05
  • 개 신랑 들이기
  • 다와다 요코
  • 11,700원 (10%650)
  • 2022-10-14
  • : 1,254


이질감 드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구입.


크기 12.8 x 18.8cm에 두께 1.4cm (양장 표지 두께 포함)

생각보다 작은 책이라서 뜻 밖이었고

읽기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강한 흡입력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인이 독일에 살면서 겪는 불안한 정체성을 쓴 "페르소나"

비정상적인 소재를 이용해 '정상'인 척하는 비정상을 강하게 부각시킨 "개 신랑 들이기"

두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문장력이 좋다고 느껴진다.

묘사력이 좋고 그에 따른 흡입력도 높은 편.

하지만 글의 호홉이 긴 편이라 나는 읽는데 다소 피로감을 느꼈다.

(물론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에 대한 피로감도 어느 정도 섞였다고 짐작된다.)



▷ 페르소나

소설마다 작가는 작품 내에 자신의 대리인을 만든다는 점에서 보면

페르소나에선 화자인 미치코가 아닐까 싶다.

독일과 일본, 양국 어디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캐릭터다.


너무나도 심약한 두 사람의 적나라한 모습에 거부반응이 든다.

그리고 애매모호함. 미치코가 걸었던 독일 거리의 뿌연 안개 같은 

인물 묘사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점이 후반으로 갈수록 미치코를 필사적으로 변호하려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해진 바 없이 떠돌고 있는 미치코의 내재된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세지 전달을 위해 1인칭 시점을 버린 것이 아쉽다.

등장인물 모두의 내면을 서술함으로써 메세지의 전달력은 강해졌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책읽는수요일, 은행나무, 민음사, 세창 모두

'독일어와 일본어를 쓰는 이중 언어의 작가'라는 말을

책 소개 서두에 써 놓은 점이 씁쓸하면서 피식하게 된다.

작가가 이렇게 세일즈 해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진 않아서다.


책을 읽기 전 독일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 책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선 작가가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한 장치로 이용되지 않았다.

(감히 짐작해보자면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그런 장치는 없을 것 같다.)


매우 난해한 책 소개가 아쉽다.

막상 읽어보면 술술 읽히면서 매력적인 책인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한 출판사가 없는 것 같다.



동네에는 언제부터인지 피하게 되는 거리와 구역이 있다.

피한다는 말은 위험한 무엇 때문에 일부러 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피하고 있지만 딱히 볼일 없어서 간 적이 없다는 말과도 전혀 다르다.

볼일이야 만들면 되고, 더구나 미치코처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어떤 구역이든

쉬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니 역시 피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끌리기 때문에 더 조심해서 다가가지 않는지도 몰랐다.


내가 이 작가와 이 책에 거부감을 느낀 점.페르소나라는 작품은 저런 왔다리 갔다리 하는 애매모호한 표현의 연속이다.만약 이 작가가 다른 책도 이런 식의 묘사를 적용했다면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다.하지만 91년에 데뷔한 작가가 93년에 쓴 책이니최근 작품은 또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할 만큼 글 솜씨는 좋다고 생각한다.

쇼윈도가 화려하게 행렬을 이루며 안개 속에서 빛의 터널을 만들어 냈다.

산처럼 쌓인 상품들이 길 양쪽에서 빛나며 사람들을 눌러 찌부러뜨릴 듯했고,

미치코는 그 사이에 끼인채 계속 눈을 내리뜨며 걸었다.

눈을 내리뜨니 사람들의 얼굴은 눈에 안 들어오고

셰퍼드 한 마리가 백화점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길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 앞에는 검은색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서 1마르크 동전 몇 닢이 반짝거렸다.

미치코는 걸음을 멈췄다.


건너편에서 한 통통한 사람이 햄버거를 베어 먹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셰퍼드를 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먹다 만 빵을 그쪽으로 던졌다.

셰퍼드는 소녀의 목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홱 뒤로 물러섰다.

토마토케첩인지 립스틱인지 피인지 모를 빨간 얼룩이 진 빵조각을

셰퍼드는 악마라도 맞닥뜨린 양 노려보더니 쉬지 않고 짖어 댔다.

통통한 사람은 적선을 베풀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욕감을 느꼈는지

날카로운 금속성 웃음소리를 내더니 

"너, 빵이 무서운 거니? 바보네, 빵이 무섭다니."라고 말하면서

셰퍼드에게 다가갔다. 셰퍼드는 겁을 내며 한층 격하게 부르짖었고

더욱 뒤로 물러서서 백화점 벽까지 몸을 착 밀착시켰다.


그때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옆에 둔 일 미터 정도의 나무 막대기를 꽉 잡고 일어섰다.

근처에서 이 상황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통통한 사람도 말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굳은 듯 섰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통통한 사람에게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는 것뿐이었다.

손에 쥔 나무 막대기는 사람을 때리는 몽둥이가 아니라 걸을 때 의지하는 지팡이였다.


이 작가의 스타일을 대번에 알려주는 부분인 것 같다.

페르소나에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가 주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개 신랑 들이기 - 93년 108회 아쿠타와상 수상작

특별히 언급할만한 글 내용이 없다.

한 편이 마치 거대한 유기체 같아서 한 부분만 떼어 놓는다고 해서

작품 전체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93년 작품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인간사 천 년 전이나 천 년 후나 같지 않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하지만 지독한 은유가 들어있어서 읽으면 기분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먼저 느끼는 타입이라면 아마도...


일본판 표지 디자인은 글의 내용을 직접적인 표현했는데,

한국판 표지 디자인은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초록색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분홍색은 책 속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색.


13,000원이란 책 가격이 표지 디자인이나 만듬새, 종이질을 고려해보면

나는 적당함 또는 이득이라고 여겨진다.


주제와 문체가 모두 내 마음에 들었다면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처럼

새 책을 구입해 소장했을 것 같다.


추가적으로 이 책은 말미에 붙어있는 옮긴이의 말이 마무리를 망쳤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까지 첨언하며 확대 해석하는 부분에선 혐오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난해하게 작성된 글 때문에 기분 좋게 읽은 책의 느낌이 모두 사라졌다.

자기 지식 뽐내려고 작정한 느낌.


그리고 뒷면 표지에 써있는

"삿된 허위를 벌거벗기는 사나운 진실"이라는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길.

누가 썼는지 몰라도 책과는 관계가 없다.

내 생각엔 옮긴이가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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