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탐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다른 사람의 눈에 가장 좋게 보이는 행동 중에 하나는 독서가 아닐까 한다. 책을 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글을 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을 탐하는 사람들 활자중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열 명의 사람들을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사회학자도 있고, 무용수도 있으며, 심지어 요리 연구가도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책에 대한 회고는 어떤 모습일까? 이전에도 많은 비슷한 책들이 있었겠지만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왜? 그들은 그 책에 그렇게 감동을 받았을까? 인생이 바뀔만한 책이 인생에 있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작위적인 선택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한데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책을 읽는 방법이 다른 것은 아닐까? 뭐 이런 별의별 의문을 책을 읽기 전에 던져 놓고 시작한다. 아니 책을 읽기위한 타당성을 부여하는 나만의 방법인 것 같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책 한 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독서는 꾸준히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도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의식에 따라서 딱 한 권이 평생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유정처럼 1980년 광주에서 세상이 불안하여 나가지도 방안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동생의 옆에서 여섯 장만 읽으면 잠이 올 것이라 믿고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이 새벽녘에야 손을 놓을 수 있었다면 그 책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김중혁처럼 그가 쓴 글이 인생을 바꿀 만큼의 임팩트 있는 글이 아니라 다 읽고 나면 살짝 바뀐 것 같다는 느낌 정도가 들 정도의 독서의 연륜이 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인생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만 아마도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 시키고 있다는 의견에 나는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든 것의 바탕에는 독서가 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고 신영복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비유가 생각난다. 나는 아직 가슴까지 내려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발까지 내려간 것 같다. 읽고 느끼고 공감하고 실천하는 모습. ROTC 장교의 길을 포기하고 이병으로 군대를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마흔이 넘어서 글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애주고, 열심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게 할 만큼 나의 꿈은 이 늦은 나이에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독서를 탐하는 것인지 책을 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글을 읽고 있는 순간을 즐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것이 찾아지는 그날까지 그렇게 읽고 또 읽고 읽으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어쩌면 나의 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