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힘이 세다!
콩나물을 팔러 나갔다가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슬픔에 잠겨 있던 ‘나’(김선재)는 할머니를 업고 먼 여행을 가려고 유골함과 영정 사진,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 110만 원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섭니다. 아, 그러고 보니 챙긴 것이 더 있었는데 빠뜨렸네요. 잘 때 냄새를 맡으려고 할머니 옷 한 벌을, 갈아입으려고 자기 옷 한 벌을 배낭에 넣었습니다.
읍내 장터 할머니가 콩나물을 팔던 자리에 생판 모르는 생선 장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의 부재와 상실감을 또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콩밭에서 김을 매다가 쓰러진 일이 있고 난 후에 할머니가 자장가처럼 했던 말이 곧 유언이었다는 걸 알고 절골에 있는 미륵사로 가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님을 만나 삼 주 동안 할머니의 재를 올리는데, 그 마지막 날에는 이장의 봉고차를 타고 몰려온 마을 사람들이 오달막 할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재가 끝나고 할머니 유골을 절 뒷산 동백나무 숲에 뿌립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학교 선생님과 동준이, 동준이 아빠 이상덕 씨가 절에 와 있습니다.
이제 ‘나’를 한식구로 맞이하기 위한 어른들의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이장이 제일 먼저 ‘나’를 데리고 가서 함께 살겠다고 하자, 이어서 고물 장수가, 이어서 미륵사 보살님이, 이어서 학교 선생님이, 이어서 스님이(‘나’가 나중에 스님이 되기를 바람), 이어서 보라 머리(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물들임) 할아버지가 각기 다른 이유를 대면서 ‘나’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결정은 ‘나’의 몫이 되죠.
돌아가신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더 오래 지고 가지 않도록, 기분 좋을 때 저절로 흘러나오던 콧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도록 ‘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엿장수인 상필이 할머니, 재작년에 아내를 잃은 이장, 지난겨울에 날 때부터 몸이 약한 딸을 일찍 떠나보낸 선생님, 전쟁통에 가장이 되어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염소 할아버지, 돈을 못 벌어 아내와 아들이 떠나 버려서 혼자 사는 고물 장수, 잃어 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보라 머리 할아버지, 집을 고치러 다니는 오토바이 아저씨, 미륵사 스님과 보살님, 그리고 친구 상필이와 동준이.
작가는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닐까. 이 글의 주인공 선재처럼 나도 작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을 겪었”고, “열세 살 선재의 슬픔에 육십 살 내 슬픔이 기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났다”고. 슬픔은, 그래서 힘이 센 것 같습니다. 저도 작년에 사랑하는 사람 둘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선재의 슬픔과 작가의 슬픔에 기대어 그늘이 내린 시간을 건너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