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유로 처벌받는 동시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것을 요구받는다(p130). '어머니'를 향한 숭배와 혐오를 이보다 더 간단히 표현하는 문장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모성은 숭고하면서도 극악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모성이라는 단어 앞에 선 한국인은 흔히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 또는 '극성맞은 엄마들의 치맛바람'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엄마 자격도 없다는 수식어가 수많은 어머니들에게 너무도 손쉽게 붙는다. 그렇다면 '엄마 자격'이란, '모성'이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그리스 시대의 어머니들에서부터 시작해 현대 영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서구의 역사를 따라가며 모성에 대해 말한다. 책은 과거와 지금 어머니를 향한 시선과 사회적인 처벌을 논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증오하는 어머니의 심리적 맹목에 대해 논하고, 어머니가 겪는 고통과 희열에 대해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일견 당연히 여겨졌고, 또는 기이하게 여겨졌던 어머니의 여러 행동이 심리학적으로 분석된다.
붙잡고 씨름해야 할 자신만의 무언가가 없는 상태-자신만의 내적 삶을 희생해 오로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는 상태-야말로 어머니 되기의 정의이자, 적어도 암묵적 의제라고 할 수 있다(p248)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덕목과 모성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실패에-필연적인 실패임에도- 고통받는다. 한편으로 어머니는 자신에게 기대된 완벽함에 대한 요구를 자신의 아이에게 전가한다. 혹은 자녀를 자신의 자아실현의 도구로 이용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머니는 필패한다. 무엇에든 결코 폭발하지 않는, 모성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를 향한 증오와, 어머니라는 존재의 성적 욕망의 존재가 지워진 채로 괴로운 사회와 세상을 구원해야만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어머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이처럼 이상화된 모성의 그림자에서 꺼낼 수 있을까.
저자는 책 말미에서 "현대 세계가 어미니에게 부과한 최악의 요구이자 가장 견딜 수 없는 요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어머니 위에 펼쳐놓은 달콤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머니에게 광범위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괴로움을 무효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나는 이 책을 쓰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p242)"라고 말한다.
저자가 거듭 말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머니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다. 숭배와 혐오 사이에서 여성을 '어머니'라는 존재로 가두는 지금의 사회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더욱 많이 발화되어야 한다. '어머니답지 않아서' 감추어야만 했던 이야기가 더욱 가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어머니인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선량한 것도, 더 창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일을 하기로,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했을 뿐이다.(p110)" 우리가 시작해야 할 곳은 여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머니가 미래를 바라보고 책임져주길 기대하는데(그밖에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천진난만하기만 한 그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