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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님의 서재
  •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 문영심
  • 10,710원 (10%590)
  • 2010-10-15
  • : 41
 

 

책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첫 느낌이 그리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책의 띠지와 뒤편에 적혀있는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

이라고 하는 문구가 내게 콕. 와서 박히더라.

한때나마 내 가슴에 문학을 품었던 건 아니지만, 요 책을 계기로 나도 한번 문학좀 품어볼까,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왠지 나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설마설마하니, 정말이다)

뭐가 그렇게 다들 천재라고 야단들인가 싶어서 호기심 반반해서 보게 되었다.

보고난 후의 마음은 Oops. 나쁘지 않다. 아니, 너무너무 좋다.

 


이야기의 시작은,

현재 다큐멘터리 나레이션 대본을 쓰면서 살아가지만 현재의 밍숭맹숭한 생활에서 아무런

성취감이나 만족,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수영의 현재를 그리고 있다. 그런 그녀가

그녀가 한 때 마음에 품었던 천재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생전 감옥생활을 하던 곳에 실제로 있던

돌 하나를 선물받게 되면서, 혈기왕성하던 시절 소설을 쓰고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던 대학시절의 이야기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요즘 나오는 가벼운 소재의 이야기들처럼 그다지 밝지만도 않고, 즐겁지만도 않다.

물론 주인공 수영을 비롯한 그녀처럼 꿈많고 패기 많은 희수와 수옥, 일명 수자매 삼인방의

귀여우면서도 유쾌발랄한 우정을 그리는 대목에서는 나도 몇번이나 혼자 킥킥 거리면서 웃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문학'이라고 하는 문창과 공동의 관심사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고,

그 속에서의 우정과 사랑, 또 갈등과 애틋한 마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수업을 받던 도중에 생겼던 특이한 에피소드,

운동권스럽고 다소 다혈질적이고 입이 좀 거칠긴 하지만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던

친구와의 이야기,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던 수자매에게 커피를 공짜로 주곤 하던 카페, 그리고 업선배.

처음에 업선배가 등장하면서 수자매와 함께 이러저러한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때에는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진행될 줄은 몰랐다. (스포?) 하지만 뭐, 나도 그.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수영의

어깨를 주물주물해주면서 격려하고 위로해주던 업선배와의 그날 밤 분위기에서는 뭔가

애틋한 걸 감지하긴 했었지. 쿄쿄쿄 여튼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뭐 쏘쏘

수영은 거침없고 당돌하긴 해도, 사실 겁도 많고 소심한 아이였으니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수자매에게 있었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기억난다.

업선배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았던 석균이 다니던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향숙이와 성숙이 자매가

처음으로 대학교 축제에 와서 웃고 떠들며 구경하고, 수자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평소에 수자매를 좀 재수없어 하던 3학년 선배가 와서 막 '어디서 굴러먹던 여자애들을 데리고 와서

문창과 얼굴에 먹칠을 하고 앉아있냐' 하며 정말 히안한 소리를 해댈 때 -

그때 희수가 잠자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서더니 따귀를 올려부치면서

한마디 하던 말. 아 정말 너무 통쾌하고 속 시원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속 시원한 말들은 항상

시원시원하고 대범한. 언제나 큰 소리로 솔직하게 자기어필 잘하는 리더십여왕 희수가 잘 하더라.

 

"잘 들어. 걔네들은 지저분한 애들이 아니야.

네까짓 게 언제 네 힘으로 네 입에 들어갈 밥 한 톨 벌어본 적 있어?

부모한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어린 나이에 자기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곳으로 가게 된 애들이야.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들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자기들 힘으로 그런 데서 나가 제대로 살아 보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

애들이란 말이야. 너처럼 대가리는 비고 입만 살아 가지고 잘난 척하는 것들이

맘대로 업신여겨도 좋은 그런 애들 아니야.

소위 문학 한다는 년이 겨우 그따위 사고방식 가지고  문학이 잘도 되겠다." (p.126)
 


 

그리고 주인공이 문창과를 전공해서 문학을 항상 염원하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습작이든 뭐든, 중간 중간에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때 써서 상까지 받았었던 그 '쥐가족' 이야기도 그렇고,

또 대학교 방학 때 썼던 '수' 이야기도 그렇고. 아주 나중에 다시 쓰게 되는 병숙과 시동생의 이야기나,

거의 마지막에 석균이 '그나마 좋았다'고 얘기해줬었던 도서관 사서 공무원의 이야기도 그렇고.

종종 단편소설이나 시가 등장하는데 그 작품들을 읽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_^

 

우리가 무언가를 꿈꾸고 염원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시행착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또 어릴 적 한 때의 일로만 치부해왔었던 꿈을 정녕 현실에서 이뤄내기 위한 수영의 노력도 그렇고.

모든 게 대단하고, 멋지고, 새삼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과연 수영의 남편처럼 누군가가 내 꿈을 대놓고 저지하고 정면승부하려들때,

나는 내 꿈에 대한 자신감과 다짐으로 그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뭐 암튼 그렇다.

 

책 중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책 속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자꾸만 현실로 생각해서

겨우 작품 하나 접했을 뿐인데, 마치 그 작가를 다 안다는 듯이 착각하지 말라고.

사실은 나, 이 책 보는내내 지은이 문영심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나이 계산까지 해가며

어림짐작으로 아니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책을 읽은 후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뭐, 역시나

백프로는 아니더라도 일부분, 자전적인 소설이더군!@

뭐 자전적이든 아니든, 나 이 책 너무 좋았어. 간만에 정말 진지 잡수면서도 완전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최고의 국내작품을 만난 기분. 하하하하하 행복해요 -

 

 

 

 

 

 

* 다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속 기억에 남는 밑줄

 

#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사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나는 내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거든. 아니, 누가 나더러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으냐고 물어본 적도 없지. 물어봤다면 나는 거절했을 거야.

 노 땡큐라고 말했겠지. 그래도 이왕 태어났으니까 불평하기보다는 살아야겠지.

 우리가 직접 알아보자고. 왜 이따위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말이야.

 장 그르니에나 알베르 카뮈처럼 우리의 언어로 그 비밀을 밝혀 보는 거야.

 그게 우리가 이 엿 같은 세상에 던져진 이유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p.45)

 

 

# 청춘은 사람들이 흔히 마랗는 것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아름답기 보다는 더러웠고, 사람들은 어리석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초조함과 조바심이 스물한 살의 내 영혼을 파먹고 있었다.  (p.45)

 

 

# "내가 매일 걔와 같이 있고 싶고 섹스하고 싶어하는 게 이상한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거 아니냐고?"  (p.101)

 

 

# 우리가 서로를 안다는 게 실은 참 피상적인 거거든. 이름이나 나이, 어느 학교 나왔나, 직업은 뭔가,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고 가정환경은 어떤가, 돈은 어느 정도 있나,

 상대방에 대해서 그런 정보를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지. 그렇다고 뭐 잠자리를 해 봐야 꼭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걸 어디다 두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 수영이가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고 해서 하는 말이야.  (p.112)

 

 

# '세상에는 그렇게 울면서 후회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인생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p.145)

 

 

# 물론 그녀가 고마웠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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