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그림이 아닌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그림 혹은 미술과 관련된 책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문장입니다. 예전에는 그림만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림 안의 사람이 보이더랍니다.
저는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이란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살바도르의 작품을 보면서 살바도르가 혹시 그저 순수한 사람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라 칭하는데, 초현실주의라는 것이 대개는 순수하거나 상상력이 흘러넘치면 그의 시각과 관점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순수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상상력은 풍부한 사람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할아버지의 예민한 성품을 물려받았고, 엄마가 금쪽이같이 키워주신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곳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해안가로, 주변 보이는 풍경들은 때로는 바람에 깎이고, 모래에 쌓이면서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그런 주변 풍경들이 가끔 살바도르 달리에게는 그의 작품에서와 같이 흘러내리고 변형된 사물들로 보였다고 해요.
살바도르 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앤디 워홀을 보는듯합니다. 왠지 장난기 많은 평범하지 않은 표정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슈몰이에 관심이 많았고, 화가 이외로서의 이미지, 스캔들은 후에 앤디 워홀에게 영향을 준듯합니다.
8살인가, 10살 많은 연상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증오하기도 했고요. 갈라와 결혼을 했지만, 갈라는 늘 바람을 피웠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달리도 맞바람을 피웠습니다. 사랑과 애증이 늘 반복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개인사를 듣는데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가 떠올랐어요. 예술은 천재성, 광기, 상처를 자양분 삼아 자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중에는 살바도르 달리 외에도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있지요. 벨라스케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시녀들>입니다. 미술수업에서 종종 중요한 작품으로 일컬어지기도 해서 눈이 많이 익은 그림인데요. 이번에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을 읽으면서 벨라스케스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림만 아는 정도였다면 이제 그것을 그린 사람도 잘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엄청 성실하고 신실한 사람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살던 시대는 화가라는 직업을 천대하던 시대였나 봅니다. 벨라스케스는 직업도, 신분도 미천했지요. 환경은 썩 좋지 않았지만, 곁에 계시던 그의 스승이 잘 이끌어주셨나 봅니다. 화가 중에는 문맹이 많았던 시절, 스승은 그에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고,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글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스승과의 돈독한 관계 덕분이었을까요? 결혼도 스승의 딸과 했다네요.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그림만 그려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괜찮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건, 벨라스케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돈은 벌었지만, 자신의 신분 상승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예술은 고귀한 것이고, 그것을 나타내는 화가 역시 고귀한 신분의 예술가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죠.
그래서 궁정화가에 지원합니다. 그에게는 궁정 다른 화가의 시기와 질투를 견디는 시간도 있었고, 왕 펠리페 4세가 그의 그림을 크게 인정해 준 시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흔들리지 않고 추구했어요.
르네상스 때부터 전해내려오는 화풍은 그림 안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모두 다 꼼꼼하게 그려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사실적으로 그리되, 순간의 다른 인상에 주목했지요. 마치 사진기로 포착한 하나의 순간처럼.
그리고 인물은 꼼꼼하게 그리되, 배경은 좀 더 과감하고 유연하게 그리고 그의 그림은 고귀한 신분의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소외된 약자까지도 어떠한 편견 없이 진실되게 담고 있습니다.
책에 실린 그의 여러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벨라스케스를 재발견했습니다. 그때 그런 사람이었군요. 멋진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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