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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_mei님의 서재
  • 유령의 시간
  • 김이정
  • 15,120원 (10%840)
  • 2024-09-23
  • : 1,294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들이 사람들 사이에 화두가 되었던 것도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사실 돌이켜보면, 두 이념이 팽배하게 대립하고 반공이 강조되었던 시절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지금 40대 이상의 나이라면 누구나 반공 포스터를 그려 보았고, 반공 글짓기를 해보았을 테니.


소설의 주인공 이섭은 세상을 바꿀만한 일을 했거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굴곡진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평범한 남자였다. 다만 그에게는 이상과 신념이 있었고 그 이상과 신념이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과 달랐을 뿐이다. 그랬기에 이섭은 원치 않게 ‘유령’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유령처럼 살았어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섭의 삶은 절대 비루하지 않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결코 작지 않다.


내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된 계기는 이미 고인이 된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젊은 시절에 좌익 활동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다른 시대에 태어난 덕에 이섭과 그의 가족처럼 힘든 삶을 살지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지만, 소설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고통을 느껴볼 수 있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원치 않게 유령이 되어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생을 보내다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유령의 시간>을 통해 이섭과 또 다른 ‘이섭들’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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