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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님의 서재
  • 에케 호모
  • 오수완
  • 14,400원 (10%↓800)
  • 2026-09-14
  • : 1,640


혼불문학상 최초의 SF 수상작, 오수완이 그려낸 낯선 세계

다산책방에서 출간된 오수완의 장편소설 <에케 호모>는 제1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단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이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의의는 순수문학의 산실로 여겨지던 혼불문학상 역사상 최초의 SF 수상작이라는 점에 있다. 1970년 철원 출생으로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오수완 작가는 2010년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로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2020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로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이력이 있으며, 이외에도 <탐정은 어디에>, <축구의 풍경> 등 다채로운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그의 행보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언제나 책과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려는 인간의 의지였다. 이번 신작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재앙으로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진 멸망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최진영, 박준 등 쟁쟁한 작가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낸 이유는 자명하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기필코 지켜내야만 하는 다정함과 사랑의 본질을 밀도 높은, 간명한 문장으로 직조했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선호하는 독자는 물론, 건조한 일상 속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의 감각을 일깨우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한 소설이다.


무너진 문명, 파괴자이자 구원자인 노먼의 궤적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길, 휴게소, 케산, 터빈, 웨이, 헤드, 스포, 샌달, 사막, 노드, 마지막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한 소녀와 한 남자의 로드무비 같은 서사가 펼쳐진다. 문명이 붕괴하고 판과 건물이 쓰러진 황량한 도시에서 주인공 노먼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 서브와 함께 정처 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풍력발전 터빈이 돌아가는 도시 케산의 묘사나, 낡고 부서진 사물들을 수리하며 연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냉랭하고 잔혹한 공기를 리얼하게 전달한다.


역설의 초월자, 대다수를 지우고 단 하나를 살려내다

평범한 생존기처럼 보이던 서사는 노먼의 실체가 드러나며 거대한 반전을 맞이한다. 노먼은 단순한 수리공이 아니라, 불 대신 충격파를 사용해 인류 대다수를 절멸시킨 파멸적인 신이자 초월적 존재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를 '프라임'이라 부르며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여기서 서사의 기묘한 모순이 발생한다. 전 지구적인 살상을 자행한 절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브라는 작은 여자아이 하나를 세상의 잔혹한 폭력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하지 못한다. 흉터가 있는 사냥꾼이 아이를 강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무참한 일상의 위협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노먼이, 역설적이게도 오직 서브를 지켜내기 위해 대다수 인류를 지워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노먼이 먼지투성이 서브를 꼼꼼하게 씻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극한 정성이나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려 애쓰는 사소한 행위들은, 그가 저지른 거대한 학살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기이한 온기를 만들어낸다.


이 사람을 보라, 폐허 속에서 여전히 인간으로 산다는 것..

오수완 작가의 문체는 감정을 소리 높여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다.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참혹한 재난 상황이나 절망적인 내면을 묘사할 때도 수사를 최소화한 채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건조하게 스케치한다. 이러한 정제된 스타일이 오히려 행간에 숨겨진 슬픔과 애틋함을 배가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소설 속 노먼의 독백인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었고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에케 호모>라는 제목은 요한복음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군중 앞에 세우며 한 말인 '이 사람을 보라'를 뜻한다. 인간의 도덕과 법률로는 심판할 수 없는 초연한 존재를 가리키는 이 제목은 노먼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이 소설은 대단한 히어로 서사나 초능력, 첨단 기술의 경연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망가진 안경다리를 접착제로 붙이고, 아이의 몸을 닦아내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통해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분투를 증명한다. '폐허 속에서 여전히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라는 문구처럼.. 작가는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끝끝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혼불문학상이 이 낯설고도 서글픈 SF 서사에 손을 들어준 까닭은, 그 질문이 동시대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급하고 본질적인 화두임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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