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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님의 서재
  • 그림 그리는 과학자
  • 이동주
  • 19,800원 (10%1,100)
  • 2026-07-01
  • : 670



위즈덤하우스 신간 <그림 그리는 과학자>는 형태학을 기반으로 미증유의 종을 발굴하는 생물학자 이동주가 집필한 저작이다. 동아대학교 응용생물학과에서 곤충을 탐구하고 한양대학교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을 거쳐 신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국내 일호 자연과학 책방 '동주'를 운영하며 소통해 왔다. 이 책은 17세기부터 현대까지 자연의 신비를 도화지에 옮긴 학자들의 집념을 추적한다.


언어의 장벽을 통과하는 직관의 힘

글은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지만 언어 장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반면 그림, 세밀화는 국경을 관통하여 생명체의 온전한 실재를 보여준다. 책머리 저자의 말처럼 자연학자들에게 묘사는 필연적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펜과 수첩은 연구자의 분신과 같다.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 역시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기압계, 시안계 등과 함께 필기구를 움켜쥐었다. 그가 작성한 자연의 단면도는 육천여 종의 생태 분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도록 돕는다.


오해와 편견에 저항한 관찰자들의 동반

진리를 추구하는 경로는 외롭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연발생설이라는 완강한 시대적 착각에 대항했다. 그녀는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번데기를 거쳐 날아오르는 우화 과정을 판화로 담아냈다. 이는 형태학적 규명이자 역사학자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가 헌사했듯 최초의 생태학적 업적이다. 찰스 다윈의 갈라파고스 핀치새 부리 스케치 역시 단순한 모사를 넘어 자연선택설의 주춧돌,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그는 생물의 지형도를 그리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박물의 다채로운 흔적

도화지는 서구 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의 <전어지>에서 한반도 수족을 독자적 체계로 구분했다. 정학우, 이규경, 남계우, 유희 등 조선 지식인들은 집요한 관찰로 향토 박물학을 세웠다. 에른스트 헤켈의 방산충 묘사는 미시 세계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메리 애닝이 석판에서 찾아낸 화석 도판은 유실된 과거를 선명하게 증명한다.


버제스 혈암을 해독한 고생물학자들의 집념

찰스 월컷, 해리 블랙모어 휘팅턴, 스티븐 제이 굴드로 이어지는 탐구자들의 계보는 고대 생물의 폭발적 진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버제스 혈암에서 발굴된 기상천외한 화석들은 단편적인 렌즈 촬영만으로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카메라는 빛과 각도에 따라 왜곡된 결과물을 낳을 수 있지만, 연구자의 지난한 스케치는 삼차원의 실체를 이차원 평면에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사진 도감이 놓치기 쉬운 피사체의 은밀한 굴곡조차 펜 끝에서 신뢰성을 획득한다. 뱃멀미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험지에 뛰어든 숱한 해양 생물학자들이 굳이 스케치를 고집한 까닭은 찰나의 시각적 편견을 배제하고 생태의 숨겨진 진실을 후세에 온전하게 전수하기 위함이었다.


연필에서 AI 인공지능 시대로 이어지는 관찰의 확장

기록을 향한 인류의 도구는 멈추지 않고 진화한다. 흑연과 낡은 수첩에서 출발한 도해는 탁월한 전자현미경을 거쳐 이제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를 맞이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도안 작업이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선을 긋는 행위가 미미한 예술적 재능의 발현이 아니라 대상의 오류 없는 전달임을 분명히 밝힌다. 과학, 생태에 관심 있는 일반인 역시 책에 수록된 견고한 분류학 지식을 이정표 삼아 생태 세밀화에 직접 도전할 수 있다. 산야에 핀 들풀이나 곤충의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고 기존 도감의 기준에 맞춰 도화지를 채우다 보면, 누구든 막연했던 삼라만상을 명증한 이해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연필을 쥐었던 까닭..

삼라만상의 질서를 밝히려는 열정은 고결하다. 감춰진 존재를 드러내려는 의지는 자연을 향한 숭고한 경외에서 출발한다. 현대 생물학자인 저자가 국제 학회에서 치밀한 도판으로 신종을 설득하고 학술지에 등재한 사건은 도해의 설득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손끝에서 탄생한 획들은 정량화된 수치보다 얽히고설킨 뭇 생명의 연대를 수월하게 납득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저자는 책의 맺음말을 통해 뛰어난 연구든 아니든 모든 기록은 소중하며, 이 저작이 훗날 생명의 서사시를 다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뻗어가기 위한 '첫 번째 서문'이라고 고백한다. 십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숱한 편집자를 거치며 다듬어진 원고는 저자 자신이 지닌 학자적 고집과 집념의 산물이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이


"점과 선으로 기록된 옛 문헌 속 동식물의 도판을 감상하고 그러한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긴 숲을 통과한 기분이다"


라고 찬사를 보냈듯, 독자는 이 책을 덮는 순간 거대한 생태계의 복원 현장을 빠져나오는 듯한 짜릿함을 경험하게 된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에서 새를 실물 크기로 옮긴 존 제임스 오듀본, 나아가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신사임당의 곤충 기록에 이르기까지.. 펜과 붓으로 빚어낸 이 치열한 자연학의 역사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명멸하는 생명들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다.


신간 <그림 그리는 과학자>는 단순히 아름다운 화집을 넘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의 동반자로서 짊어져야 할 시선의 책임을 묻는 생태 철학서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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