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벤 쿨만 글/그림 <회색도시 The Gray City>는 이원경 옮김으로 가람어린이에서 2025년 11월 출간되었다.
<회색도시>는 <린드버그>, <암스트롱>, <에디슨> 등 생쥐의 모험을 다룬 '생쥐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토르벤 쿨만의 2024년 신작이다. 아빠와 함께 낯선 도시로 이사 온 주인공 소녀 '로빈'은 집,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 심지어 꽃까지 모든 것이 '회색'인 이 도시의 풍경에 위화감을 느낀다.
획일화되고 무감정한 회색 세상에서 유일하게 노란색 비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색을 지키던 로빈은 학교에서 자신처럼 색을 숨기고 있던 친구 '앨러니'를 만나게 된다. 두 아이는 이 도시가 회색이 된 원인이 거대 기업 '회색 공장'이 모든 색을 강제로 섞어 회색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임을 밝혀낸다.
회색이 '모든 색의 합'이라면 다시 분리할 수도 있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로빈과 앨러니는 회색 산업의 공장에 잠입해 도시의 잃어버린 빛깔을 되찾는 모험을 감행한다. 무미건조한 획일화와 통제에 맞서는 아이들의 순수한 용기를 저자 특유의 압도적이고 웅장한 작화로 그려낸 수작이다.
🖼️🎨무채색 & 무개성 규율에 던지는 프리즘의 혁명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고 졸업 작품인 <린드버그> 단 한 권으로 단숨에 그림책 거장의 반열에 오른 토르벤 쿨만. 신작 <회색 도시>에서 그는 시선을 '현대' 혹은 '근미래'의 사회적 풍경으로 돌려 색채를 사회학적 현상으로 치환하는 과감한 시도를 선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주목한 점은 작가가 '회색'을 다루는 집요한 태도이다. 단순히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 단계로서의 회색이 아니라 '통제된 질서'와 '억압된 감정'을 상징하는 회색 층위를 쌓아 올려 독자에게 시각적인 답답함, 건조함을 경험하게 한다. 이후 로빈의 노란 비옷이 등장하는 순간..
시야가 확 트이는 듯한 강렬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들이 주는 시간의 박탈감을 시각적 차원으로 이식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학살이 일어나는 유대인 도시를 배회하는 빨간 코트 소녀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혹자는 저자의 건축적 묘사와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에 열광할 수도 있겠다. 또는 빽빽한 아파트 숲, 입시 경쟁으로 대변되는 획일적인 한국의 현실을 투영하며 깊이 공감할 수도 있다. 특히 로빈과 앨러니가 발견한 '회색 산업'의 비밀.. 즉 "모든 색을 섞으면 회색이 된다"라는 설정은 다양성이 말살되고 몰개성화되는 현대 사회의 '압박'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로빈은 회색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회색 속에 갇힌 다양한 색들을 '해방'시킨다. 이는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고 억눌린 개성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어 조화롭게 만드는 진정한 다양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회색도시>는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나다움'을 지키는 용기를 주는 모험담이자 어른들에게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매몰된 채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묻는 철학적인 그래픽 노블이다. 글밥은 많은 편이지만 이해를 돕는 삽화가 어울려 이해가 어려운 편은 아니다.
텍스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토르벤 쿨만의 그림은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마음의 외투가 혹시 회색 단벌은 아닌지 조용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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