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잊히기를 바랐나. 스스로 잊기를 바랐나. 그곳의 아이들은 잊히기를 바랐던 아이들일까, 아니면 잊고 싶은 게 있었던 아이들일까. 나는 잊히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돌아왔다. 왝왝이의 세계에 남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기로 했다."_120p
아빠 몰래 학원을 그만둔 연서. 우산 없이 비 오는 거리를 헤매고, 아빠는 연서가 먹는 우울증 약을 숨기기에 바쁘다. 어느 날 테니스 코트 옆 하수구 근처를 걷다가 "왝왝!" 소리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개구리나 맹꽁이인 줄 알았던 그녀가 플래시를 비추자, 수면 위에 뜬 사람의 두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한다.
연서는 두려움을 떨치고 하수구 아래로 내려간다. 구불한 하수도를 지나 투명한 막을 뚫고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지고, 그 소년이 머무는 기묘한 세계가 펼쳐진다. 연서는 지상 어디선가 마주친 듯한 소년의 이름을 '왝왝이'라 부르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끔찍한 버스 사고를 겪은 연서는 현장에서 친구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참사의 자세한 정황은 묘사되지 않고 단편적인 피해 상황 만이 소환된다. 그녀는 참사의 후유증, 충격으로 인해 그날의 기억, 동승했던 탑승자의 이름 등을 떠올리지 못한다. 사고 이후 학생회는 희생자를 기리고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추모제'를 기획하지만, 이런저런 잡음에 시달리며 행사 준비는 난항에 부딪힌다.
연서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마다 '왝왝이'가 기다리는 하수구 아래 세계를 찾는다. 그곳에는 지상의 괴로운 기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망각의 시간으로 유도하는 열매가 존재했다. 일종의 보호소, 대피처, 은신처라고나 할까. 왝왝이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만큼 그의 존재는 지상에서 잊히고, 그 또한 지상에서의 기억을 소멸시켜 가는데..
연서는 자신과 뜻이 맞는 혜민, 효정과 함께 왝왝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하수구 안을 헤맨다. 와중에 그녀가 아끼던 길고양이 '옥이'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자주 호명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행위인지를 깨닫는다.
연서와 친구들이 '왝왝이'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마음속 깊은 어둠과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어 주면서, 그가 금단의 분홍 열매가 아닌 자신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지상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을 때..
연서는 교실의 빈 책상, 책상 위 새겨진 비뚤배뚤한 낙서. 그 책상에 자리했던 누군가의 존재를 수면 위로 떠올리면서.. 비로소 '왝왝이'가 누구였는지를, 그의 이름 석 자를 트라우마와 망각의 수렁에서 건져낸다.
제15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로아 작가' 장편소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당시 기억을 상실한 연서가 하수구 속 지하세계에서 비슷한 사연을 지닌 왝왝이와 교류하며 충격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 결국 연서와 왝왝이는 서로가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닮은 꼴이고 유사한 존재이다. 마음을 담아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희망적인 기억을 떠올릴수록, 흐트러진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자의적인 도피, 무심한 타의에 의해 소거된 존재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음침한 하수구에 침잠하고 은둔했던 왝왝이가 친구들에 의해 이름을 찾고 호명되며 관련 기억이 재생될 때, 그는 중독적인 금단의 열매를 끊고 나와 지상의 밝은 빛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눈빛을 교환하며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한, 세상은 그들을 기억할 것이고 그들 또한 당당히 자신을 세상 밖에 내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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