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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님의 서재
  • 삶과 운명 1
  • 바실리 그로스만
  • 15,750원 (10%870)
  • 2024-06-28
  • : 2,190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러시아 간 치열한 전투와 무차별 살상이 벌어진 스탈린그라드를 배경으로 말살되는 인간성과 동료애를 리얼하게 그린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이 출간되었다.

총 3권, 2000여 페이지에 가까운 대작으로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에 포함되었다.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는 이로써 100 번을 맞이했다.



"하지만 체호프는 말했네. 신은 좀 비켜서 있으라고, 소위 위대한 진보적 사상들도 좀 비켜서 있으라고.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자고, 인간에게 친절하고 주의를 기울이자고. 그 인간이 누구든, 사제든, 농부든, 수백만 재산을 가진 공장장이든, 사할린의 유형수든, 레스토랑 웨이터든, 인간을 존중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우리 러시아인에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걸세."_<삶과 운명> 1권, 437p



2차 대전의 전투 현장에서 3년 넘게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은 이를 <삶과 운명>에 속속들이 옮겼다.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의 지대지 폭탄 '바뉴세이'의 세례로 도심의 건물이 초토화될 때, 수많은 시민들과 군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생사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통을 견뎌냈을까?


폭탄의 파편이 끝없이 쏟아지고, 화염이 사그라질 틈이 없는 볼가강 주변 참호에 웅크린 어린 군인들. 불빛 하나 없는 도시 지하 벙커에 숨어 폭탄의 굉음과 진동에 귀를 기울이는 남녀노소 시민들의 눈이 빛난다. 그들은 아비규환의 지옥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노약자 앞에 서서 지하 통로를 개척하고, 지쳐가는 서로를 다독이며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한 인간 본성 앞에서 대다수는 절망하고 낙담했다. 그럼에도 내일을 믿는 자들은 동료애를 발휘하고 사랑을 나누며 정치/예술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나 바실리 그로스만은 선하고 밝은 면만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유대인을 차별했으며, 소수 민족을 폭압하고 가망 없는 전투의 선봉에 끌어들였다. 스탈린과 정치 경찰의 냉혹한 감시망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했고, 이는 무고한 이들이 외딴 수용소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 끝에 아사하거나 총살 당하는 비극을 양산했다. <삶과 운명>은 당시 러시아의 정치/군사/예술/시민 사회 등 총체적인 면을 드러내 예리한 메스로 그 내면을 낱낱이 해부했다. 공산당 고위층과 수뇌부 장군들의 부패와 위선을 고발하는 한편, 이들로 인해 유능하고 현명한 이들이 숙청 당하고, 수많은 사병들과 노약자들이 포탄에 스러지고 굶어죽는 현장을 생생히 그려냈다.



"이제 이 장면이 끝나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될 텐데 어떤 삶이, 어디에서 시작될까 - 시베리아에서, 모스끄바 감옥에서, 수용소 바라끄에서? - 하는 미지 앞의 불안도 그들을 짓눌렀다."_<삶과 운명> 3권, 287p



바실리 그로스만과 <삶과 운명>은 스탈린 주의자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작품은 1959년 완성되었지만, 원고는 당국에 압수되어 빛을 보지 못했다. 어느 친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반출한 원고를 바탕으로 1980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후, 9년 후에야 러시아에서 대중들이 자유로이 접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 당시 소련과 스탈린그라드, 수용소의 모든 것, 2차 대전 판 '전쟁과 평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 100번째 작품은 바실리 그로스만 <삶과 운명> 전 3권이다. 러시아 국경과 중동, 대만 등지에서 전쟁 발발 위험이 높아지는 지금.. 혼란한 시대를 관통하는 선구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실주의 러시아 문학을 애정 하는 이들이라면 시간을 두고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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