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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온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받아서 쓴 서평입니다 >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오랫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단순한 문학적 여운이 아닌, 책 속에 담긴 고통의 파편이 나를 깊이 찔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얼마나 오래도록 퍼져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특히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은밀한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 채 방관하는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철문처럼 무거웠다.
나는 폭력을 싫어한다. 몸으로든 말로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 그것을 정당화하려 드는 언어들조차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다룬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중의 아동학대는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이야기 같지만, 정용준 작가는 이 낡고 잔혹한 소재를 결코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섬세한 시선으로 폭력의 흔적이 한 인간의 생에 어떤 방식으로 각인되고, 또 어떻게 끝내 삶의 결정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고요하게 추적한다.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한순간도 안락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작가는 그런 삶을 그려낸다. 누군가가 건넨 상처로 인해 평생을 싸우듯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 상처는 때때로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정의라는 이름을 쓰며 또 다른 폭력으로 향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자경단 이야기는 그런 복잡한 감정의 연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법이 다 하지 못한 일을 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정말 그것이 옳은가?
이 작품은 단죄의 소설도 아니고, 통쾌한 복수극도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는 조용한 기도다.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가해자가 돌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인물의 내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돌아올까 봐’가 두려운 관계. 그 끔찍한 아이러니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사랑해야 할 가족이 공포의 대상이 된 사람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외면하는 제도와 시선들.
나는 자경단을 옹호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벌하는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맡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나는 그들의 분노와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사회가 아이들을, 가장 약한 존재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만큼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폭력을 혐오한다고 말하는 우리는, 과연 이 사회에서 폭력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상처는 잊히지 않고, 어떤 질문은 대답 없이도 끝내 우리 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