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퇴사란 말이 가볍게 쓰여지는 요즘이다. 오늘 회식이 끝나고 후배와 지하철을 타러 걸어오면서 나눴던 순간들에도 '퇴사'란 단어가 몇 번은 나왔다. (물론 나도, 후배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회사를 떠나는 것도 모자라 탈조선을 해야 하는 요즘이라고 한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고,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걸 찾아 떠나는 밀레니얼 세대다. 그래서 이 책도 마냥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아무튼, 퇴사 뭐 이런 느낌이랄까?
하지만 민호기씨의 퇴사생활은 말 그대로 호기好機를 위한 퇴사였다.
2.저자인 민호기는 15년차 직장인이며, 열 한번 퇴사를 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15년차 직장인의 열두 번째 회사를 위한 이력서'이기도 하다. 정말 대단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맨 처음에는 이 책에서 표현하는 '너'들의 시선처럼 그렇게 자주 회사를 옮기는 이유도 궁금하고, 끈기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경력 5년 차인 나도 (어쩌다보니 나도 이렇게 나이가 먹었다. 아직 주니어다 주니어. 나는야 아기 표범) 그렇게 보는데, 하물며 '너'들은 어떤 시선으로 볼까.
그러나 민호기의 모든 퇴사는 -그 누가 이유가 없을까 하다만은-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결국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책 내용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들어보면 그랬다. 그의 시선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늘 조직을 향해 있었다. 민호기씨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들도 그랬고. 물론 혹자는 그저 저건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는 프로 불편러 아니야? 라고 볼 수도 있겠지.
조직(혹은 회사?, 둘은 엄연히 다르니까) 생활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건 모두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얻으려면 '너'님들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기득권 세대가 늘 그렇듯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바뀌어가는 시대를 보지 못한다. 더 나은 무엇을 향한 추구와 달라지는 문화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그저 조직에 대한 비난과 불평불만으로 치부한다. 그런 결과로 조직이 점점 썩어간다. 어쩜 좋을까요. 물론 그들도 그들의 입장과, 그들의 생각이 있겠지. 그래서 경영이 더더욱 어려운 거겠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부분들을 알려고조차 안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이다.
3. 그렇다면 나는 어떤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호기에, 호기로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저자가 겪었던 어떤 한 회사에서의 면접에서 매우 공손한 톤앤매너로, 퇴사가 '정말 이것 때문이다' 라고 하실 만한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리더십' 을 이유로 들었다. 팀장답지 않은 팀장, 혼자만 뛰어난 실장, 철학이나 능력이 부재한 대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와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그런 점에서 정말 난 축복받았다.
어제 한 동생을 만나서 (심지어 그 동생은 내가 워너비라고 하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엘리트의 세상이 아닌 범인들의 세계에서는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드물다. 하물며 그 실력이 있는 사람,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상사로 만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난 그런 상사를 두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 심지어 난 팀장님과 진행된 개인 면담에서도 결국 작년에는 대놓고 '제가 팀장님 좋아하는 거 아시죠?'라는 이런 낯부끄러운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는 에피소드들. 그냥 그랬다고.
또한 다른 곳에서 저자는, 회사에 좋은 리더와 인재들이 있다면 그들과 굳이 떨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본인은 정체됨으로써 뿌리 깊이 성장하는 거목이 아니라, 거목을 굽이굽이 휘감아 오르는 작은 나무라고 표현한다. (225p)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흡, 난 팀장님을 휘감아 오르는 작은 나무이다. 담쟁이 덩굴이 될거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멋진 팀장이 되고 싶다. 능력있는, 멋진 팀장.
4. 여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586세대 직후 70대에 출생한 90년대 학번 세대 및 밀레니얼 사이에 낀 저자의 고민도 재미있었고. 가볍지만 뼈가 있으며, 주니어에게도, 어느정도 회삿밥을 먹은 시니어들에게도 깨달음과 성찰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단 말이죠. 그 와중에 PR 마케팅-현업에 대한 열정까지 가득한 저자가 멋있어보였다.
내가 대표라면 저자랑 일하고 싶을 텐데. 제가 마음으로나마 열두번째 회사 대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뭐라구요..? 제가 대표로 있는 회사따위 안들어 오실거라구요? 예..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