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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페이지 악보
  • 중독 인생
  • 강철원 외
  • 13,500원 (10%750)
  • 2019-05-24
  • : 599

1.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는 마약 사범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감옥 내에서 약을을 끊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다. 그러나 출소를 하자마자 바로 다시 유혹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대게 되고, 다시 교도소로 수감되게 된다. 그 때 당시 드라마를 보면서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해롱이가 얼마나 감옥 내에서 노력을 했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인데 저렇게까지 끝내야 하나, 나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시청자가 그러한 해롱이의 재수감을 '반전' 으로 여기고 감독을 탓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 생각난 해롱이의 모습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실제로 그렇다.

2.

대마초, 히로인, 물뽕, 프로포폴, 졸피뎀.. 언론을 통해 익숙해진 마약류의 이름이다. YG는 각종 마약 사건에 연루되며 약국이란 별명을 얻었고, 클럽에서 일어나는 물뽕 사건으로 인해 큰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흡수된 후 용해되어 사라져 증거를 찾기 어려운 터라 혐의를 밝히는 것도, 그 뿌리를 뽑는 것도 흐지부지 된 상태이다. 동시에 프로포폴은 어떤가, 각종 연예인들의 수면 마취 사건으로 인해 몇년 전부터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마약은 소위 연예계 이슈로만 인식을 하고 일반인 마약 사범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사실 생각 자체를 할 일이 드물었다. 뭐 일반인이 마약한다는게 큰 이슈가 되나, 해외에서 마약을 불법으로 들여오다가 검거됐다고 하면 그게 끝이지 마약사범 한명 두 명이 뭐 대단하다고 언론에 노출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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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인생》 은 한국일보의 기자 4명이 공동 집필한 책으로서, '한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약류에 대해서 언론은 검거시에만 대서특필할 뿐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곳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마약류 범죄 실태 뿐 아니라 투약자 100명과의 심층 인터뷰, 교도소 재소자 300명과의 설문조사, 뿐만 아니라 중독자 재활센터에서 보름간 함께 합숙을 하며 느낀 기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글의 서두에서 난 마약이 '그들만의 리그' 에서 벌어지는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마약은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깊숙이 퍼진 이웃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 국가' 라는 타이틀을 아직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구 10만명 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마약 청정국 (유엔 기준) 이라는 통상의 국제 기준을 따른다고 하지만, 2018년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1만 2613명이니 인구 10만명당 24명인 꼴이다. 즉, 통계를 감안하면 한국은 이미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 것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전국 마약류 중독자 상담 실적을 보자. 2013년에는 1,356건을 것을 시작으로, 2016년을 기점으로 상담 건수가 크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8년, 3.5배가 넘는 수치인 5,894 건으로 뛰어 올랐고 이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약퇴치운동본부 상담사들이 말하길, "처방약 중독 환자가 늘었다"고 한다. 대마초, 필로폰 등 전통적인 마약 위주로 들어오던 것이 기존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수면제, 살빼는 약, 신경안정제 등 처방약 의존으로 인한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다는거다. 특히 마취제 의존이 늘었는데, 이는 모르핀 계열의 진통제 의존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하고, 미국은 이미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오남용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출처: "기분 좋아져" 커피에 타준 게 필로폰"... 마약 상담 6년 새 4배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28862&ref=A)


책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마약 중독자의 뇌와 실제 마약류에 관한 이론적 진단을 제공한다. 마약류는 도파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파괴한다.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도록 할 뿐 아니라 도파민이 생성되는 체계 자체를 무너뜨린 다는 것이다. 굉광히 무서웠던 점은, 일차적으로 쾌락을 경험하게 된 중독자의 경우는 그 첫 쾌감을 잊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쾌감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중독자에게 약물을 투약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상을 그 때의 기억이 살아나며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약이 없는 감옥 안에서는 '말'로 마약을 한다는 것, 그렇기에 더더욱 마약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또한 마약 사범을 잡는 함정수사 기법은 '기회 제공형'과 '범의 유발형' 두가지로 구분된다. 어차피 약을 할 의사가 있는 자에게 수사기관이 죄를 짓게 해서 잡는 기회 제공형은 수사의 합법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마약을 하거나, 판매할 생각이 없는데 그들을 유혹해 잡는 범의 유발형은 위법이다. 경찰은 검거된 투약자에게 미끼가 되어달라는 도움을 요청해 더 많은 중독자들을 잡아낸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계 관계자는 "원래 약을 지니고 있는 투약자만 검거"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반박도 만만찮다고 한다. 범의 유발형 수사는 위법이지만, 이런식으로 꼬리 물기 수사를 통해서 죄를 지을 생각이 없던 사람들을 자극해 잡는 경우도 많다는 뜻이다.

또한 대법원이 만든 '양형 기준'에 따르면 '중요한 수사 협조'는 감경 사유가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형 기준은 마약 투약자와 마약 판매자의 관계 가운데서 어그러져 도리어 마약범죄를 부추기게 만든다.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판매책의 형량을 감형하기 때문에, 실제로 마약 사범들이 교도소에 모이면 '판매책이나 단순 투약자나 처벌에 큰 차이가 없으니 마약을 팔아서 돈이라도 벌자' 는 얘기가 나온다는 거다.

마약 중독자는 곧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형량을 다 채우고 출소하 마약류 사범들은, 다시 중독을 이기지 못해 판매자 혹은 투약자의 길로 돌아서게 되는 경우가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 마약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태는 어떨까. 마약류 사범이 한 해 1만 4000명 이상, 그중 70%가 초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누적된 사람의 수는 더 많다는 뜻이다. 마약범죄는 암수범죄임을 고려해서 20배 정도로 계산한다. 그러나 1년에 치료를 받는 이는 고작 5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치료 보호를 받는 사람은 100명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약류 사범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마약은 검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치료가 중요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사회적 시선 및 시스템 자체가 구축되어있지 않다. 한번 마약류에 발을 들인 사람은 쉽게 중독을 끊기가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6부에서는 재활 공동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나는 마약류 사범들을 위한 재활 공동체의 존재 여부조차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부디 이 책에 출연한 모든 분들은 그들의 다짐대로 꼭 마약 중독의 굴레에서 진심으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과 이 사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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