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E.T.A.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은 굉장히 독창적인 액자식 구조를 가진 풍자 소설이다. 인쇄소 직원의 실수로 천재 고양이 '무어'의 자서전과, 비운의 음악가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평전 인쇄 원고가 뒤섞여 출간되었다는 기발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이 기묘한 이중주는 인간 사회의 허위의식과 예술가의 고독한 운명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첫 번째 주인공인 스트릿 출신 수고양이 무어는 스스로를 '묘(猫)계의 괴테'라 믿는 근자감의 소유자. 나름 책을 읽을 줄 알고 말도 할 줄 아는 보통이 아닌 이 고양이는 인간의 책을 몇 권 훔쳐 읽고는 온갖 고상한 척, 지적인 척은 다 하지만, 실상 그의 관심사는 오직 따뜻한 아랫목과 맛있는 츄르뿐이다. 겉으로는 고결한 영혼을 읊조리며 속으로는 안락함만 추구하는 무어의 뻔뻔함은, 당시 교양 있는 척 폼을 잡던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속물근성을 때리는 고단수 풍자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무어의 이면지를 차지한 악장 크라이슬러는 호프만의 영혼을 갈아 넣은 페르소나이다. 속물적인 귀족 사회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오직 순수 예술만 고집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또라이 취급을 받는다. 안락한 묘생을 즐기는 무어와 달리, 크라이슬러의 삶은 짠내 나는 비극과 예술적 고뇌로 가득 차 있다. 캣타워 위에서 세상을 논하는 고양이의 귀여운 헛소리에 낄낄거리다가도, 책장을 넘기면 크라이슬러의 처절한 심연이 고개를 내민다. 작가가 의도한 '편집 오류' 구조는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고결한 이상과 세속적인 생존 본능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혼돈의 공간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스마트폰으로 인문학 유튜브를 보며, 책 몇 권 읽고 지적 허세를 부리는 우리의 모습은 무어와 얼마나 다를까..ㅋ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호프만이 던지는 날카로운 위트와 유머는, 타성에 젖어 살아가던 우리의 일상에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죽비가 되어 뼈를 때린다. 속물적인 세상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근데 왜 하필 고양이였을까ㅋ 궁금해 잠깐 찾아봤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호프만이 지독한 애묘인이었다고. 실제로 그가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 '무어(Murr)'였는데 호프만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진짜 고양이 무어는 호프만이 글을 쓸 때 책상 위로 올라와 원고지를 밟고 지나가거나, 서랍을 열어 대본을 뒤적거리는 등 '고양이는 왜 그럴까' 행동을 자주 했고, 호프만은 반려묘의 그 영악하고 영리한 눈빛을 보며 "저 녀석, 속으로는 인간을 비웃으며 지 자서전을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고 한다. 아..여튼 결론은 고양이 나만 없어..ㅠ
PS. 이쯤에서 생각나는 단편 하나, 미야자와 겐지의 <고양이 사무소>다.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미야자와 겐지의 <고양이 사무소>는 시공간을 초월해 ‘고양이를 통한 인간 사회의 지독한 풍자’라는 완벽한 교집합을 공유한다. 첫째,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그렸다. 무어는 인간의 관직 체계와 학벌을 부러워하며 지식인 행세를 하고, <고양이 사무소>의 고양이들은 정장을 입고 서류를 만지며 관료 사회를 형성한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계급제와 출세욕을 고양이 세계에 그대로 이식한 셈. 둘째, 가차 없이 차별과 속물근성을 폭로한다. 안락함에 취해 길고양이 시절을 잊고 하층 고양이를 무시하는 무어의 모습과, 온몸이 까맣고 더럽다는 이유로 가장 일 잘하는 ‘화덕고양이’를 따돌리는 사무소 고양이들의 잔인함은 인간의 얄팍한 선민의식과 차별주의를 거울처럼 비춘다. 셋째, ‘냉소적인 경고’로 끝을 맺는 결말까지. 무어의 뻔뻔한 자기합리화나, 고양이들의 싸움에 질려 사무소를 폐쇄해 버리는 사자의 모습은 "너희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를 게 없다"는 작가들의 서늘한 메시지로 통한다. 결국 호프만의 무어가 겉만 번지르르한 '개인'의 위선을 꼬집었다면, 겐지의 사무소는 그 위선이 뭉쳐 만든 '집단'의 잔인함을 고양이의 탈을 빌려 고발한 것. 여튼 <고양이 사무소>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에 실린 단편이다. 작은 앞발로 꼬물대며 잉크를 묻혀 서류를 정리하고, 양복 깃을 매만지며 에헴- 하고 출근하는 고양이들이라니, 상상만 해도 심장이 아플 정도로 귀엽다ㅠ 하지만 겐지는 아주 좌니난ㅋ 작가라, 내가 그 귀여움에 정신 못 차리고 방심하고 있을 때 가차없이 죽비를 날리더라.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들도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인간들처럼 치졸하게 편을 가르고, 왕따를 시키고, 계급을 따진단다." 라며. 비록 결말은 사자의 호통으로 씁쓸하게 끝나지만, 머릿속에 남은 '책상 앞에 쪼르르 앉아 돋보기를 쓰고 서류를 검토하는 고양이 공무원들'의 비주얼만큼은 지우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소설인 건 분명함. 어쩌면 그 귀여운 상상력 덕분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걸작이 된 게 아닐까.. 아, 여튼 결론은 또 고양이 나만 없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