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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님의 서재
  • 1913년 세기의 여름
  • 플로리안 일리스
  • 20,700원 (10%230)
  • 2013-10-19
  • : 3,098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은 거대한 파국(제1차 세계대전)이 닥치기 직전 유럽 거물들의 일기장과 영수증을 탈탈 털어 만든 고급 찌라시로ㅋ 찬란하게 번뜩이던 유럽의 문화적 절정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기록한 독특한 역사 에세이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교과서 속 거인들의 '인간적인 민낯'을 마주하는 즐거움에 있다. 순한맛 일례를 들어볼까. 프란츠 카프카는 연인에게 편지를 보낼지 말지 밤새 고뇌하는 소심한 고민러이자 어장관리 피해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엑스 여친 치맛폭 붙들고 나 여기 아퍼 저기 아퍼 징징대는 금쪽이로 그려진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와 융은 학문적 주도권을 두고 유치한 기싸움을 벌이며,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트로츠키, 티토가 같은 시기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공원 근처에 머물며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역사적 우연은 묘한 전율을 선사한다. 그 와중에 세상은 또 힙하게 돌아간다. 프라다 1호점이 문을 열었고, 루이 암스트롱이 처음으로 트럼펫을 잡았으며,〈봄의 제전>이 파격적인 불협화음으로 초연되어 스트라빈스키는 관객들에게 멱살을 잡힌다. 기존의 모든 유행과 장벽이 무너지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Modernity’가 팝콘 터지듯 태어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폭풍 전의 고요'와 '찬란한 데카당스'에 있다. 책 속 약 300 여명의 인물들은 눈앞에 닥쳐올 참혹한 전쟁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예술과 사랑, 질투에 몰두한다. 이 책에서 플로리안 일리스는 역사가를 넘어, 과거의 파편들을 모아 완벽한 무대를 연출하는 극작가에 가깝다. 그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저 1913년의 단면들을 위트 있게 툭툭 던져줄 뿐이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 결말(1914년의 전쟁)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긴장하고 몰입하게 된다. 우리가 향유 하는 이 평화와 문화적 풍요도 어쩌면 내일 끝날지 모른다는 서늘한 경각심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남긴 예술과 사랑은 얼마나 지독하게 아름다운가를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하찮을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띵작이다. 


PS. 플로리안 일리스가 책 전체를 1월부터 12월까지 구성했음에도 <1913년 세기의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인 데에는, 문학적 비유와 실제 역사적 사건이 절묘하게 맞물린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우선 이 책에서 '여름'은 계절을 넘어 '인류 문명이 가장 풍요롭고 뜨겁게 번영했던 전성기'를 상징하는 문학적 은유라고 본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얼어붙듯, 1914년의 전쟁(겨울)이 오기 직전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풍요와 자유가 절정에 달했던 순간이 바로 1913년의 '여름'이었던 것. 일리스는 이 찬란한 번영을 '세기의 여름'이라 부르며, 이는 곧 들이닥칠 빙하기(전쟁)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또한 책의 중반부인 5월에서 8월 사이(여름 시즌)가 되면, 전 유럽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약속이나 한 듯 특정 휴양지로 몰려들며 이야기가 정점으로 치닫는데, 이때 흥미진진한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대거 발생한다. 아니 이분이..? 헐 저분이..? 끝도 없이 나오니...이하 궁금하면 책으로 확인하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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