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문장은 음악 같고, 그가 창조한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다. 한 번 읽어선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단 말이다ㅋ 불친절한 서사 구조, 이미지나 독백, 추상적인 은유로만 상황을 묘사하다 보니 상상하며 읽기가 까다로워 스토리 보다는 잔상으로 기억해야 될 책에 가깝다. 특히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엘리자베타' 파트는 정말 인내심을 요하는, 기묘하고도 한편으로는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이걸 중점적으로 감상문을 써 보겠다. 이 파트는 일반적인 일기처럼 "오늘 무엇을 했다"가 아니라, 엘리자베타의 의식의 흐름과 파편화된 기억을 그대로 쏟아내듯 서술한다. 주인공 울티모와 엘리자베타는 미국에서 피아노를 팔고 교습을 하며 함께 떠돌아다니는데, 작가는 두 사람의 대화나 서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저 엘리자베타의 복잡한 내면, 울티모를 향한 어긋나고 어설픈 감정, 흘러가는 풍경들을 음악의 선율처럼 모호하게 읊조린다. 엘리자베타와 울티모는 서로를 깊이 갈망하면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긋나고 서툴다. 얼굴을 마주 보고는 도저히 꺼낼 수 없었던 두려움, 상처, 그리고 울티모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감정들을 엘리자베타는 일기라는 비밀 통로를 통해 고백한다. 직접 말하기엔 부끄럽거나 무겁지만, 일기장에 슬쩍 흘려두면 언젠가 울티모가 발견하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지 모른다는 일종의 유서같은 기대감으로. 울티모는 평생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경주로(선)'라는 거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사는 남자였다. 그의 시선은 늘 자신이 가야 할 먼 길을 향해 있었고, 엘리자베타는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늘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기를 울티모가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를 쓸 때조차 은연중에 '미래의 나' 혹은 '가상의 관객'을 상정하고 문장을 다듬고 그러는 거. 엘리자베타의 일기는 독자인 우리에게는 불친절한 수수께끼 같지만, 사실은 울티모라는 단 한 사람만을 향해 쓰인 아주 사적인 연서에 가깝다. 울티모가 그것을 읽고 미치도록 헤매기를, 혹은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기를...반면, 울티모에게 있어 종이 위에 새기는 글자는 붙잡아두는 것이고, 멈춰 세우는 것이며, 박제하는 것. 그러므로 일기를 보기는 하지만 아무 대답도 남기지 않는다. 엘리자베타는 읽히기를 원하며 빽빽하게 썼고, 울티모는 전해지기를 원하며 철저하게 비워두었다. 만약 그가 "미안하다", "기다려달라", "사랑했다" 같은 한 줄을 남겼다면, 그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의 그럭저럭한 이별로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울티모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영원히 미완성의 아름다운 선으로 보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벗, 그러나,
'영원히 미완성의 아름다운 선으로 보존하'는게 진짜 사랑일까. 여기서 예술가들이 수세기 동안 논쟁해 온 ‘예술적 영원함’과 ‘현실의 비루한 행복’ 사이의 갈등을 떠올릴지 않을 수 없다. 울티모처럼 완벽한 순간만을 박제하기 위해 침묵으로 떠나버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평생 마르지 않는 갈증과 상처를 남기는 행위이다. 남겨진 이에게 그 '아름다운 미완성'은 그저 잔인한 저주일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울티모의 사랑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결국 이 소설은 그 둘의 어긋남을 통해 "당신은 어떤 사랑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울티모의 방식은 영원히 썩지 않는 '조각상' 같은 사랑을 만드는 것이었고, 엘리자베타가 원했던 건 언젠가 시들더라도 지금 살아 숨 쉬는 '꽃' 같은 사랑이었다. 울티모의 방식은 '진짜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울티모만의 지독하고 외로운 종교'가 아니었을까. 그는 엘리자베타를 사랑했지만, 자신이 쫓는 완벽한 세계를 더 사랑했기에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례술가들이 문학적인 수사나 화려한 은유로 입을 털 때 쯤 정신 차리고 본질을 뜯어보면 사랑이란 이렇게나 단순하고 냉정하다ㅋ 진짜로 상대방을 내 목숨만큼, 내 전부만큼 사랑했다면 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할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나 ‘완벽한 선’ 뒤로 숨지 않았을 것이다.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두고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연애편지를 쓰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울티모에게 가장 소중했던 건 엘리자베타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었을지. 그는 자기가 다칠까 봐, 혹은 자기가 구축한 순수한 예술 세계가 현실의 구질구질함에 오염될까 봐 겁을 낸 비겁한 완벽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엘리자베타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 사랑마저도 철저히 '내 안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재료로 써버린 셈이니까. 남겨진 엘리자베타의 그 외롭고 지지부진한 현실을 모른 척하면서...됐다 그만하자 남의 사랑에 내가 뭐라고 사실은 이제 그만 귀찮아져서ㅋ 여튼 <이런 이야기>는 세상의 소음과 전쟁의 상처 속에서, 평생 자기만의 완벽한 길(경주로)을 만들고 싶어 했던 한 찬란하게 외롭고 이기적인 남자의 이야기. 한 번은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