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의 글을 읽다보면 가끔씩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별 생각없이 흘려버리던 개념들에 대해 고진이 치밀하고 명료하게 분석을 가하는 것을 볼 때면 '아 이게 철학을 하는 모습이구나.'하고 또다시 뒷머리를 긁쩍이게 된다.
무엇보다 "언어와 비극"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에도 주석학과 현재' 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역자는 어느것이든 골라 읽어도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언어와 비극"에서 보여지는 서너가지의 주요 논점 중 '에도 주석학과 현재'는 고진이 항상 강조하는 철학하는 방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자 사고의 핵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주자학과 중국의 주자학을 상황/맥락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논어"의 '대화성'을 이끌어 내는 지점에서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쯤은 알 수 있고 또한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개념과 또다른 당연한 개념을 그렇듯 일목요연하게 맺어줄 수는 있는 사람은 고진만한 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정육면체의 색깔퍼즐을 이리저리 돌려가다 단일한 여섯면의 색채를 컬러플하게 조합해내는 호기심 많고 명석한 꼬마처럼 고진은 단일한 여섯면의 색에 익숙한 나에게 뭔가 질서가 보이는 컬러플한 퍼즐을 내밀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전'과는 다르지만 그 다름은 '이전'으로부터 구한 것한 것이다. 즉 새로운 것은 없지만 새롭게 바라볼 수는 있다. "언어와 비극"은 고진의 전반적인 사유체계를 손쉽게(?)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어떤 사상도 알기 쉬운 것은 없으며, 알기 쉽게 한다면 그 생명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난해한 것을 알기 쉽게 말할 수 없다면 정말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진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손쉽게라고 표현하기가 멋쩍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이지 않고 알곡을 얻은 건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언어와 비극"은 그간 한국에서 출판된 고진의 저작들에 비해 훨씬 쉽게 고진에게 다가설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저작이다. 그래서 나에게 "언어와 비극"은 이전까지 가졌던 고진에 대한 불명확한 이해의 시도와 오해라면 오핼 수 있는 그런 지적인 껄끄러움에 새로운 마모(磨耗)를 가하여 한결 매끄러운 사유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특히 이번 번역서는 역주가 상세해서 고진의 제대로 된 길잡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담이지만 책 표지가 너무 고급스럽고 왠지 연약하달까(?) 그런 생각이 들어 속지로 뒤집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그래야 흰눈같은 겉표지가 유지될 것 같아서, 안그러면 금방 진흙탕에 뒹구는 눈덩이가 되고 말기에- 다 읽고 책장에 꽂아놓으면 제법 그럴싸한 장서의 역할을 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