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조금 기분이 다운되는 날이나, 우울한 날, 기분을 전환시키고 싶을 때는 주저없이 집을 벗어나 떠나는 도시가 있다. 태어나 살아온 동네가 아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장소. 나에겐 안동 월영교가 경주 대릉원이 군산 밤골목이 맘 한켠을 기댈 수 있는 제3의 고향이다. 내 온기가 담긴 물건과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짝꿍이 있는 집을 홈그라운드 삼아 언제든 마음의 고향을 찾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됐다.
이 책은 이처럼 마음을 기대거나 쉴 수 있게끔 자신을 달래는 '공간'에 관한 책이다. 그 공간이 집일수도 있고 제3의 도시가 될 수도 있고 마음 놓은 사람의 곁이 될 수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혼자 서울에서 적응하는 타향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책의 주된 내용은 작가가 만들어간 '자기의 공간'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차있다. 불만 끄면 포근하게 잠들 수 있던 여행지에서의 밤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따뜻하고 온전한 위로를 내 집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14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팔 언저리가 따뜻해지는 그런 장소들을 계속 발견하고 소중하게 기억한다. 다시 삶이 흔들리는 어느 날에도 나는 어딘가를 떠올릴 것이다. 오늘의 내 마음은 거기에서 왔다고. (23쪽)
책은 2부로 구성된다. 1부 '마음이 흔들릴 때면 그곳을 떠올린다'에서는 '집'과 '마음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2부 '나의 세계를 넓혀 가는 중입니다'에서는 '일', '취미', '연애'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에 담긴 에세이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면 작가만의 언어로 치환된 글들이 문득문득 보이는데 섬세한 단어와 묘사로 쓰인 글에서 여러 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언제까지 다녀야할지 불확실한 회사에서 저자는 하루에도 여러번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공간을 영위하고 지켜가며 하루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도 지난 28살 겨울 서울에서 하루하루를 자신을 달래며 보내던 시절이 기억났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적었던 이력서가 받는 이 없는 편지로 돌아올 때 느꼈던 좌절과 슬픔. 서울에서의 생활도 지겨웠기에 저 멀리 아는 이 없는 지역으로 도피하듯 떠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달래며 마음과 몸을 놓일 공간을 만들었다면... 그렇게 서울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책을 읽어갔다.
현재는 내 공간인 집과 도시, 전국 방방곳곳의 '마음의 고향', 더 나아가 평생의 짝꿍을 만나며 내 공간을 영위하며 살아가기에 저자의 현 상황(타향살이, 35살 미혼, 직장인)과는 다르지만 많이 공감이 간 에피소드들이 많다. 다만 지금 혼자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자취생들과 타지에서 고향의 그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많은 공감이 갈 책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어가며 내가 사는 공간을 돌아보고 영위해가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작가의 섬세한 단어로 표현된 다양한 공간 이야기를 읽어가며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