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화 보기가 시들해졌다. 계속되는 실망이다.
이럴 땐 오래 전 영화를 본다.
살아온 나이테만큼 달리 읽히는 것이 있다.
<연어알: Salmonberries는 딸기인데, 오역일까? 의역일까? 농담일까?>은 퍼시 애들론(Percy Adlon)의 1988년 작 <바그다드 카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작품.
<바그다드 카페>가 이라크의 사막을 배경으로 두 여성의 사랑과 우정을 그렸다면<Salmonberries>은 알래스카의 설원을 배경으로 같은 주제를 변주한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에 이미 바닥이 낳고, 관건은 같은 주제를 어떠한 관점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데, 이 감독은 제대로 내 스타일이다.
영화에 대한 감응정도로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를 판정하는 오만을 부리고 싶을 만큼 이 영화를 믿는다. 더 정확하게는 퍼시 애들론이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믿는다.
<신화의 힘>에서 조셉 캠벨은 사랑을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 그릭고 아모르적 사랑으로 나눈다.
에로스적 사랑은 생물학적 충동에서 나오고, 아가페적 사랑은 차라리 자비에 가깝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요소, 개성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결론은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경험인 아모르적 사랑만이 진정한 영혼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사랑의 한 쌍이 여성과 남성일 필요는 없다.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퍼시 애들론은 그의 영화에서 '아모르적 사랑'을 지향하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모든 예술가들의 사랑의 이상은 '아모르'일 것이다. 다른 점은 퍼시 애들론이 그 지향점으로 가는 과정과 방법을 알고 있는 드물게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이 점에서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답답한가보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퀴어영화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싫다.
주인공이자 가수이기도 한, K.D. Lang의 주제곡 'Barefoot '이 설경 위로 흐를 땐 그 누구라도 심장이 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