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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불안
- 에이미 립트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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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3-05-31
: 66
베를린의 여행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은 책이었다. 매력적인 그런 도시들에 대한 여행이야기를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전작을 몰랐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때로는 즐거울테고, 거기서 잠시 머물러 살아간다는것은 일상이 더해진 일일테니 짧은 여행보다 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날수 있을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만난건 누군가의 짙은 일상이었다. 방황하고 숨기도 하고, 거칠기도 했다가 한없이 약하고 여린 시간을 보낸 날것의 일상이었다. 다만 그곳이 베를린이었다. 달라지길 기대하는 우리의 여행처럼 그녀는 더 큰 희망으로 베를린으로 향했으나 지독하게도 일상이다.
새의 울음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을 발견하고, 라쿤을 발견하기 위해 새벽과 늦은 밤 거리를 헤매는 것이 무슨 여행인가. 그녀는 동물 전문가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여행이 그랬다. 책을 읽으며 나도 그녀의 일상과 여행의 중간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속했다가 다시 분리가 되었다가, 묻혔다가 다시 도망치는 것을 반복하며 흔들린다. 그러다 사랑을 만난다. 그 사랑은 착한 그녀를 완벽하게 해주는 멋진 트로피가 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랬다. 그러나 사랑은 끝난다. 이별이 집착이 되는건 그것이 납득할수 없기 때문이다. 트로피로 생각한 그 사랑이 어째서 이토록 급속도로 끝이 날 수 있는가.
그녀는 이별의 트로피인 집착을 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p.186
초고속 사건이란 거의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어떤 것이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이 주는 인상이 훨씬 오래간다. 우리는 시간속에서 순간을 절대 포착할 수 없다. 영원함을 기대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대로를 경험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 순간에 따라야 한다.
p.198
타인은 예상밖에 있다. 모두에게는 각자 내 이야기에서 굽이굽이 멀어지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서로의 타임라인이 부딪칠 때, 아주 잠시 동안만 교차한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b들이 있다.
p.207
변화는 더뎠지만 집요했다. 마치 머리카락이 자라듯, 나는 치유의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느 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집을 옮기고 아무런 괴로움 없이, 한때는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작은 기념품들과 선물을 버리기로 결심한 날처럼, 한 번씩 도약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학의 두개골, 그 싸구려 주머니,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가슴 철렁하는 매력을 느겼던 첫 순간을 버린 날, 후퇴하는 순간도 있었다. 분주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여전히 관심과 콜라에 굶주린 채, 외로이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며 밤이 깊어지고, 아침이면 숙취와 역겨움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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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연결이 되어 이야기하는 그녀는 일상을 베를린에서 한 것일까, 여행을 다시 그녀의 일상으로 끌고 온 것일까. 생각해본다. 섬세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녀는 베를린에서의 모든 시간들을 기록했다. 의아했던 주요 단어들이 어째서 그녀에게 긴밀하게 이어진 문장들이 되는지 책을 덮으며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역시 언젠가는 미래의 어떤 여행에서 그녀의 참매와 라쿤처럼 그러한 것들을 껴안고 일상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마침내 성숙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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