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흔들리며 피는 꽃



성해나 작가의 첫 기담집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특별히 출간 전 사전 서평단에 당첨되어 아홉 편의 수록작 가운데 세 편을 먼저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과 낯선 존재들을 통해 오늘날 인간 사회의 욕망과 불안을 비추는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기담이라고 하면 귀신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담을 떠올리기 쉽지만 <인비인>이 보여 주는 기이함은 오히려 인간 내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죄의 흔적을 품은 채 대를 이어 전해지는 책상, 자신을 만든 존재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타인의 삶을 거래하는 경매장,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 등 작품 속 존재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특히 <인비인>은 단순히 기묘한 설정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작품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인간과 비인간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성해나 작가는 그동안 <혼모노>를 비롯한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섬세하게 포착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기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러한 관심사를 더욱 낯설고 선명한 방식으로 확장한다. 그래서 <인비인>은 공포나 괴이함 자체보다도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세 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역시 표제작인 <인비인>이다. 작품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한 노인으로부터 받은 의문의 원고뭉치를 읽게 되면서 시작된다. 원고의 화자는 일제강점기 말 일본의 한 대학에서 세균학을 연구하던 청년으로, 존경하던 교수의 제안을 받아 만주의 비밀 연구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국가와 인류를 위한 연구에 참여한다고 믿었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특히 교수가 주인공을 데려간 시설 내부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문당한 사람들, 산 채로 해부되는 사람들, 포르말린 속에 보존된 시신들이 늘어선 공간에서 인간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재료로 취급된다.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짓밟고 있었으며, 주인공 또한 그 비극의 한가운데로 서서히 끌려 들어간다. 이후 이야기는 그곳에서 탄생한 정체불명의 존재 ‘가타마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단순히 기괴한 존재를 등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인비인>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품 속 비밀 연구 시설은 실제 역사 속 생체 실험과 전쟁 범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공포는 괴물이나 귀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믿었던 인간의 탐욕과 오만,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무감각함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존재임을 일깨우며 그 묵직한 여운은 작품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인비인>이 역사 속 비인간성을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었다면, 이어지는 <윤회(당한) 자들>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결핍과 불안을 기묘한 방식으로 보여 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윤회자 모임이라는 수상한 공동체로 사람들을 이끈다. 전생에는 완전한 몸을 지녔으나 윤회를 통해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고 믿는 이들의 모습은 황당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선택받은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현실의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게 했으며 완벽함을 강요하는 사회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의 불안과 결핍을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읽고 나면 가장 무서운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완전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남는다.


마지막 작품인 <아미고>는 세 편 가운데 가장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AI와 휴머노이드가 일상이 된 미래 사회에서 주인공인 스턴트맨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기술은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고, 사람들은 효율과 성과를 위해 서로를 소모한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이 우선되는 촬영 현장, 실수 한 번으로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노동자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스턴트맨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현실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정작 작품 속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존재는 휴머노이드 아미고이다.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행동하고 기계는 점점 사람을 닮아 가는 모습은 묘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안겨 준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능력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관계 맺음에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아미고>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 작품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기이한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속 폭력과 차별,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공포가 얼마나 섬뜩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인비인>은 기담이라는 장르를 빌려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저자는 역사와 현실, 그리고 가까운 미래를 오가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지만 결국에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끈다. 그래서 이 작품집은 단순히 기묘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기담집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묵직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사전 서평단을 통해 세 편만 먼저 만나 보았음에도 이야기들이 남긴 여운이 너무나 깊어 아직 읽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습을 비춰 낼지 더욱 기대하게 된다.

** 사전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받은 특별인쇄본을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