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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간신열전
  • 최용범.함규진
  • 15,120원 (10%840)
  • 2021-11-11
  • : 111


왕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국민의 고통과 분열을 재촉하는 인물들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고려 공민왕 때 관심법으로 잘 알려진 신돈, 이순신을 백의종군하게 만든 원균,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넘겼던 이완용, 국정 논단의 핵심 인물 최순실 등 한국사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에게 아첨하고, 나라가 어지러운 기회를 틈타 국민을 등지고 얻은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간신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요승 신돈은 공민왕의 권세를 빙자하여 제멋대로 방자한 짓을 하는데도 상하 모두 두려워하여 어떻게 하지를 못하였다고 중종실록에 적혀있을 정도로 고려의 이인자로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공민왕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신돈으로부터 국정에 대한 자문을 받고 국정에 참여시키면서 명실상부한 왕의 사부가 되었던 것이다. 토지개혁으로 국민의 신망을 받기도 했지만 부정 축재와 반대세력의 모함으로 결국 반란죄의 명목으로 죽게 된다. 최순실 국정 논단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그 둘은 역사의 냉혹한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에 나라를 고스란히 내주었던 이완용은 살아생전에 역사의 단죄를 받지 못했다. 일간지에서 그를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그를 죽이려는 독립투사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허사였다. 이완용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웃고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라는 이백의 시구를 끌어다 글을 썼다. 이백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산속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오랜 세월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냈기 때문에 나이 들어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시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이완용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고향인 나라와 국민을 배신하지 않았는가. 마음이 절로 한가하다는 이완용의 글에서 증오가 끌어 오르는 것은 왜일까.

같은 시대의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은 자신의 가족을 뒤로하고 목숨을 던졌다. 시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완용과 그 시대를 바로 고쳐야겠다는 애국지사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삶에 대한 철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성인데 이완용은 이익을 가치관으로 삼았고, 애국지사들은 정의로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가치관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 영국,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에 한반도가 외세에 뒤엉켜 어지러운 상황에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승인한 영국과 미국의 암묵적 태도로 조선이 일본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막을 수 없다 해도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위해 한일합방을 가속화한 것은 정의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1926년 이완용이 사망할 때까지 조선 각지에 땅이 생겼고 조선인 중에는 두 번째 재산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시대에 순응했다는 그의 말은 뼈 속부터 정의로움은 없었던 것이다.

왜 이런 몰가치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기회주의자들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낼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권력에 아첨하고 자신의 부정함을 철저하게 가면 속에 숨긴다. 그러다가 목표를 달성하면 서서히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의심의 눈초리를 하나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왕이나 리더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으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인물들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헛된 망상을 경계해야 한다. 우주의 기운이 나라를 보호할 것이라든지, 특정한 개발 체계를 도입하면 기업의 이익이 엄청날 것이라든지 하는 망상을 왕이나 CEO에게 간언하는 무리들을 곁에 두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결국 리더의 최대의 적은 바로 '간신'이다.

국가나 기업에서 인재 등용의 실패로 고초를 겪은 사례들은 허다하다. 실수는 용납하되 의도가 있거나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자신이 기용한 인재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퇴출시킬 수 있는 리더들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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