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잘
읽었는데 막상 서평을 쓸 때는 첫 문장 시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책 속에
있는 수 십만 텍스트 중 몇 개를 골라 내기만 하면 될 텐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블로그에 100편 가까이
서평을 꾸준히 올렸는데, 글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기 위해 첫 머리의 대부분은 의문사형으로 시작하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나의 소감을 일부 포함하는 식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 그런지 이 패턴을 바꾸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강원국
교수님으로부터 2시간 정도의 글쓰기 강의를 들었는데,
평소 고민하던 부분들을 꼭 집어 말씀해 주셔서 공감도 많이 되었고 필살기를 배웠지만 실전에 사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얀 백지 위에서는 고수의 가르침이 무장 해제되어 버린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읽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글쓰기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정여울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글쓰기 방법론을 소개한다. 매일 쓰는
습작, 불현듯 떠오르는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습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탐독하고 고전과 현대 소설을 항상 옆에 끼고 읽는 것, 어느
장소에서나 오디오 북이나 책을 읽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이 항상 내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나처럼
책 한 권 읽고 갑작스럽게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글이 솟아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므로 모든 것을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메모하는 습관과 좋아하는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은 본보기가 된다.
회사
후배가 갑작스럽게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퇴사를 한지 1달 여가
되어 간다. 소설책도 썼고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후배라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퇴사까지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회사
다니면서 글을 써도 충분할 텐데 꼭 퇴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글쓰기가 일상이 되어도 글을 쓰기가 어려운데, 일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후배는
아마도 어느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여울 작가처럼.
글쓰기
중 서평은 책을 소개하기보다는 책을 통해 내 삶과 생각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써야 한다고 한다.
책과 현재 이슈, 나의
생활을 연결해서 서평 자체의 의미보다는 내가 나 자신의 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고 정여울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한 작가의 오랜 고민과 연구를 뒤로한 채 나의 의견을 표현하라고 하는데, 사실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겁 없는 도전과 내 글이 형편없을 것 같다는 의심 속에서 발현하는 쑥스러움이 멋있는 서평으로 둔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아직까지 그런 서평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책에 대한 서평이 비판보다는 공감 위주로 표현해야 한다는 감정이 앞서서 일까.
이 책의 제목처럼 끝까지 쓰는 용기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안될 때는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영화,
미술, 책, 여행이
주요한 아이디어 창출의 보물이 된다고 한다. '삶으로
돌아가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방황하고 흔들리고 아무것도 잘 안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한다. 방황과
좌절 속에서 회복된 자아야 말로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글쓰기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었지만 정여울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위로와 격려가 되어 줄 수 있는 어머니의 집과도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그녀의 글 속에서 작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되는 감정을 느낀다. 정여울 작가의
글은 투명한 유리와 같다. 내면의
부끄러움, 고통, 부족함을
스스럼없이 투명하게 전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못난 부분을 드러내고,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세월이 좀
더 흐른 뒤 본격적인 글을 쓰는 시간이 돌아오면 나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의 쾌락은 자신이 맺은 인연, 나를 진정
알아주는 사람, 내 글을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감사에 있다.
글을 쓰게 된 이후로 아주 잠깐 스쳐가는 인연의 소중함을, 아주
오래전 마주쳤던 사람들의 애틋함을,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쓸
수 있기에 자신은 더욱 강인하고 따뜻하면서도 정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타인을 더 깊이 사랑할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나의 삶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되는 법'을 꿈꾸는
길이다.
한 문장이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한 문장이
누군가의 고단한 등을 쓸어주는 따스한 손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글쓰기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