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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학자의 노트
  • 신혜우
  • 17,820원 (10%990)
  • 2021-04-27
  • : 3,957


식물학자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표현한 식물의 그림 속에 담긴 작은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력, 그리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인간의 삶에 소박하게 투영한 에세이는 식물의 탄생에서 진화와 번식에 이르기까지의 지혜로움을 스케치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식물이나 꽃들은 적정한 온도, 수분, 햇빛이 없다면 작은 씨앗에서 발아할 수도 없고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어떤 특정한 난초들은 무려 10년이 넘도록 씨앗에서 발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꽃들은 인고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도 누구나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아픔을 감추고 애서 꽃을 피우려 한다.

산에 오르다 보면 발에 밟힐까 봐 야생화는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주 작은 모습으로 수줍게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조그만 야생화는 온갖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재촉하듯 나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는데, 비로소 멈추어야 보이는 야생화도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다.

요즘은 산에서 야생화를 일부러 찾아보게 되었는데, 1천 미터가 넘어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에서도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아기 손 같은 야생화를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와의 만남에서 오히려 나는 위로와 행복감을 얻어 간다.

책 속에 펼쳐진 식물의 지혜가 예사롭지 않았다. 산불이 났을 때 딱딱한 껍질을 테우고 싹을 틔우는 프로테아유 식물, 건조한 사막에서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 통통한 몸을 가진 선인장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도록 진화했다. 초록색 열매는 잎과 같은 색을 유지하면서 다른 동물들이 못 알아보도록 하다가 충분한 영양을 저장하게 되면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으로 초록색과 대비하여 잘 보이게 하여 동물들이 열매를 찾기 쉽도록 한다.

재미있는 식물 이야기들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 갈등이란 말은 칡 갈과 등나무 등의 합성어인데 두 덩굴식물은 각각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감아서 올라가며 성장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코스모스, 달맞이꽃, 토끼풀은 우리나라의 고유 식물이 아니라 귀화식물이다. 솔방울은 습하면 다무리고 건조할 때 벌어져서 씨앗을 멀리 날려보낸다고 한다. 여름철 솔방울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면 제습효과가 있는 이유다.

소나무나 참나무 등 침엽수 주변에서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않는데, 나무들이 특별한 화학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피톤치드(phytoncide)인데, 식물이란 뜻의 파이토(phyto)와 죽이다란 뜻의 사이드(cide)의 합성어다. 즉 식물을 죽인다는 의미로 소나무는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다른 식물들은 성장하지 못하도록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과학 과목을 통해 배웠던 내용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술, 암술, 꽃가루, 물관과 체관 등 중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아른히 떠어르며 식물의 탄생, 성장, 생식, 진화 과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여정들 속에는 저마다 특유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려면 높고 깊은 산에 올라야 할 텐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희귀종 같은 경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식물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저자의 식물에 대한 애착, 유년 시절의 경험, 식물을 통해 배운 지혜를 에세이의 끝자락에 인간적인 삶으로 투영하며 짤막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녹아낸다. 식물을 그리는 화가이자 식물학자인 저자는 식물의 과학적 관찰을 묘사하여 수채화를 그려내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봄의 전령사와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식물과 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식물들과 함께 호흡하고 계절에 따른 서로의 변화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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