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가 그런 성품 덕분에 늘 행복하다는 말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성품이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그 결과로 사회 전체, 더 나아가 온 세상이 혜택을 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고상한 성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한다. (책 30쪽)
공리주의 사상에 의하면, 인간 행위의 목적이 되는 행복이 도덕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복은 인간 행위의 규칙이요 원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들을 잘 준수하면 지금껏 위에서 말해온 삶을 모든 인류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편이 허용하는 한, 지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도 그런 삶을 허용해야 한다. (책 31쪽)
밀은 쾌락 또는 행복은 단순히 감각적 느낌이라기 보다 개개인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경험을 통해 드러나며,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욕구를 배제하고 효용을 따질 수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밀의 관심사는 쾌락 또는 효용의 측정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자로서 개개인의 품성 계발과 자기 발전이 가능한 정치사회적 조건의 실현이였던 것이다. (정치철학2 272쪽, 저자 곽준혁)
나의 최고 가치는 자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자유가 중요하고, 나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자유도 중요하다. 이런 흐름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타인의 자유가 중요한데 인구의 절반인 여성에 대한 자유가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동물권에 대한 관심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위의 2번째 인용문에서 크게 공감했고, 더 나아가서 과거의 사람인 밀이 '그리고 인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편이 허용하는 한, 지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도 그런 삶을 허용해야 한다.'라는 의견의 진보성에 놀라기도 했다.
공리주의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인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한 개인의 불행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위의 인용문들을 보면 공리주의에 대한 상당한 오해에 의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밀은 각 개개인의 행복과 그로 인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거기다가 지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피조물까지 언급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했던 것 같다.
남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행동하고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이것이 공리주의 윤리의 완벽한 이상이다. (책 41쪽)
이기심 다음으로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원인은 정신적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다. 잘 발달된 정신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끊임없이 흥밋거리를 발견한다. 철학자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지식의 원천을 받아들이고,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도록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 그런 일반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대상, 예술의 성취, 시가의 상상력, 역사적 사건, 과거와 현재의 인류의 생활 방식,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 이런 것들이 모두 그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책 35쪽)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가고, 그림을 비롯해서 예술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 흥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각의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해나가기 위해서였다. 밀이 말하는 정신적 능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인용문에 공감했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계속해서 받아 들이고 싶다.
올바르게 성장한 사람이라면, 진정한 개인적 애정을 갖고 공동선에 성실한 관심을 얼마든지 쏟을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런 관심의 강도는 다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 흥미로운 것이 너무나 많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시정해서 향상시켜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이런 세상에서, 어느 정도 도덕적·지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주된 문제는 이런 재앙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사실 아주 드문 행운이 아니고서는 그런 재앙들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 그러나 평소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해악은 없앨 수 있으며, 인간 사회가 계속 발전한다면 통제 가능한 범위로 축소시킬 수 있다. 고통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가난은 사회의 지혜에 의하여 완전히 퇴치될 수 있다.(책 36쪽)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 되고, 인종주의와 온갖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 그리고 지구 온난화라는 커다란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공동선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밀이 말한 가난도 우리는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고통의 대명사라는 가난도, 너무 커서 체감하기도 힘든 문제 지구 온난화도, 그 밖에 모든 문제도 우리는 그 해결 도구들을 완벽하진 않지만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이라고는 관심과 정치적 의지뿐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나 다른 강연들을 통해서 공리주의, 특히나 벤담식 공리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컸고, 당연히 공리주의 그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오해가 컸다. 따라서 애초에 책을 읽기 전부터 부정적 생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밀의 공리주의에 공감한 부분이 많았고, 특히나 개인 수준에서의 논의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먼저 쓰여진 <자유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추후에 읽어봐야 할 듯하다. 그럼 더더욱 공리주의와 밀에 대한 편견이 해소될 것으로 생각된다. 밀에 대한 높은 평가와 버트런드 러셀이나 존 롤스가 왜 밀을 출발점으로 삼았는지 이해가 되는 독서였다. 공리주의와 밀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으나 편견과 오해가 어느정도 해소되었다는 것에 크게 만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