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열한 살쯤, 옷은 짤막하고 딱 달라붙고 볼품없는 누런원피스 차림이었다. 머리엔 납작하고 빛바랜 갈색 밀짚모자를썼고, 그 아래로는 숱 많고 새빨간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등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얼굴은 작고 하얗고 야윈데다 주근깨가 많았다. 입은 커다랬고 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눈동자는 빛이나 분위기에 따라 초록으로도, 회색으로도 보였다.
지금까지는 보통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예리한 사람이라면 아이의 턱이 날카롭고 단호하며, 커다란 두 눈엔 활기와 생기가 넘치고, 입은 귀엽고 감정이 풍부하며, 이마는 넓고 둥글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즉 통찰력이 있는사람이라면 매슈 커스버트가 터무니없이 겁을 내는, 이 집 없는 여자 아이의 몸에 남다른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단정 지었을지도 몰랐다.- P25
"제가 들게요. 별로 무겁지 않거든요. 이 안에 제 전 재산이 들어 있긴 하지만 무겁진 않아요. 그리고 조심해 들지 않으면 손잡이가 빠져버려요. 그러니 잡는 법을 잘 아는 제가 드는 게 나아요. 굉장히 오래된 가방이거든요."- P26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 P31
"아저씨, 아저씬 이게 무슨 색깔 같으세요?"
(...)
"빨간색이구나, 그렇지?" 여자아이가 한숨을 쉬며 땋은 머리를 도로 내려놓았다. 한숨이 어찌나 깊든지 평생 겪은 슬픔이 발끝에서부터 북받쳐 올라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P34
이윽고 스펜스 부인이 육체적인 문제든 정신과 영혼에 관한 문제든 간에 어떤 어려움이라도 그 자리에서 당장 해결할 수 있다는 듯 상기되고 웃음 띤 얼굴로 돌아오자 앤은 더 이상 눈물을 참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P84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비밀을 지키겠어요. 그런데 하늘이 정말 두 쪽이 날 수 있나요?"- P131
"행동이 바르면 용모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란다."- P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