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자 행상인 특유의 그의 입심은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는 구경꾼들과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듯, 그렇게 해서 이렇게 길바닥에서 장사를 벌이는 것이 본래의 자기 신분에 비해 매우 격이 떨어지는 일임을 나에게 이해시키려는 듯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P9
그의 쓸쓸한 미소는 그가 사선으로 메고 있는 가방만큼이나 놀라웠다.- P15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봄이다. 매번 봄은 바다 밑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큰 파도처럼 다가오고 그때마다 나는 이러다가 바다 저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P42
그녀의 어조는 빌쿠르가 남들 눈에 더 품위 있어 보이려고 애쓰던 시절 ‘하층민 말투‘라고 칭하던 그런 어조였다.- P44
낙담한 표정이 그녀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 역시 느끼고 있는 낙담의 표정이.
그녀가 나에게 눈길을 던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판이었다.
(...) "걱정할 필요 없어."- P46
그녀의 향수 냄새가 방안의 냄새보다 더 진해졌다. 내게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짙은 향수 냄새.
그것은 우리를 서로에게 비끄러매어 주는 고리처럼 감미롭고도 음울한 그 무엇이었다.-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