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에 맞는 경험은 아주 흥미롭기 때문에 자세히 묘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아침 5시, 흉벽 한쪽 구석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 5시는 위험한 시간이었다. 동이 트면서 해를 등지게 되기 때문이다. 흉벽 위로 머리를 내밀면 하늘을 배경으로 머리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다. 나는 보초들에게 교대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어떤 느낌이 왔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 느낌을 말로표현하기는 무척 어렵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폭발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크게 팡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번쩍거려 앞이 보이지않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다. 아주 격렬한 충격만 느꼈을 뿐이다. 전극에 몸이 닿았을 때의 느낌과 동시에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무(無)로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앞에 있던 모래주머니들이 엄청난 거리로 멀어졌다. 아마 번개에 맞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P263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처음 떠올린 것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생각해 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그 감정을 매우 생생하게 느낄 만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혔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P265
레리다와 바르바스트로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모든 사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아득한 소문과 같은 나라 스페인을 본 것 같았다.
하얗고 뾰족뾰족한 산맥, 염소지기, 종교 재판을 하던 지하 감옥, 무어인의 궁전, 꾸불꾸불 줄지어 가는 검은 노새, 잿빛의 올리브나무와 레몬 숲, 머리에서 어깨까지 검은 베일을 덮어쓴 처녀들, 말라가와 알리칸테의 포도주, 성당, 추기경, 투우,
집시, 세레칸테, 간단히 말해 이것이 스페인이었다. 유럽국들 가운데 나의 상상력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나라였다.- P288
이발소에는 팁이금지되었음을 알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벽보가 여전히 붙어 있었는데 느낌이 묘했다. 벽보에는 ‘혁명이 우리의 사슬을 끊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발사들에게 조심하지 않으면 그 사슬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P302
내 친구 호르게스 콥이 감옥에 있는데 5월 시가전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근무를 하던 사람들이라면 그가 싸움을 중단시켜 몇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들이 정언을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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콥은 부엔 치코(좋은 사람)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들이 다 쓸데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콥이 재판을 받게 된다면 늘 그렇듯 날조된 증거들이 제출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총살을 당한다면(그럴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 된다.), 부엔 치코가 그의 묘미명이 될 것이다. 지저분한 조직체계 구성원이나 훌륭한 행동을 훌륭하다고 평가할 정도의 인간성을 갖춘 치안 대원이 말하는 부엔 치코.- P319
내가 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오도하지 않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 두겠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