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국인이든 반드시 배우게 되는 스페인 단어가 마냐나 즉, ‘내일‘(문자 그대로는 ‘아침‘)이다. 그들은 가능하다고만 생각되면, 오늘 할 일을 마냐나로 미룬다. 이것은 워낙 악명 높은 악습이라서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끼리도 그것을 놓고 농담을 한다. - P23
때때로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때때로 안개가 참호속으로 액체처럼 쏟아져 들어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P47
이 시기에사용되던 폭탄은 ‘F.A.I. 수류탄‘으로 알려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전쟁 초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생산하던 폭탄이었다.
이것은 원리상으로는 달걀 모양의 밀스 수류탄과 같았으나,
레버가 핀이 아닌 테이프 조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테이프를 떼는 즉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 이 수류탄을 ‘공평하다‘고들 했다. 맞은 사람과 던진 사람을 다죽였기 때문이다. - P54
나는 산을 싫어한다. 좋은 위치에서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산들조차 싫다. 그러나 이따금 우리 뒤편 봉우리들 뒤로 동이 트면서 가느다란 황금색 빛줄기들이 검처럼 어둠을 가르고, 이어 빛이 밝아지면서 가없이 펼쳐진 구름 바다가 붉게 물들 때, 그 광경은 설사 밤을 꼬박 새고 난 뒤 무릎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앞으로 세 시간은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해질 때라도, 한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 짧은 전쟁 기간 동안에 인생의 나머지 기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일출을 보았다. 바라건대는,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 동안 보아야 할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본 것이면 좋겠다.- P62
바지 속에 기생하는 이는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양말도 없이 지냈다. 군화 바닥은 거의 닳았다. 맨발로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뜨거운 목욕을 하고 싶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싶었다. 하룻밤이라도 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이러한 욕구는 정상적인 문명 생활을 할 때 생겨나는 그 어떤 욕구보다 훨씬 더 강렬한 것이었다.-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