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으로 김필산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번 책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니 샘샘입니다. 아무튼 첫만남은 그렇게 긴장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그 긴장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결국엔 무장해재 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책은 그러니까 그런 불가역의 엔트로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미래가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고 변화하는 건 없다고? 그건 비겁한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비록 역사가 바뀌지 않더라도 난 순간순간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고 있다.”
-p.327
컨셉만으로 호기심을 온통 빨아들이는 <엔트로피아>는, 2200년대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난 이가 기원전 100년의 로마 제국의 시대까지 역행해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불가역을 모두 거스러며 이야기를 이끄는 이는, 선지자이자 전도자의 모습으로 시대와 장소를 오가며 그야말로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는’ 사건들을 뒤쫓습니다. 시간은 무엇이고, 나이듦과 그 무수한 관계들, 역사적 사건들과 이와 연결된 사건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류의 역사일진대, 이를 거스르는 인간의 말과 행동은 또 어떻게 그 역사의 원점으로 향해가고…
”그렇습니다. 저는 태어난 날짜도, 부모님도 알지 못합니다. 제게 있어서 태어난 날은 고려에서 노인으로서 처음으로 세상을 기억한 순간이며, 제 실질적 어버이는 노인인 저를 보살피며 고려식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고려인입니다. 제게 인생이란 노인에서 젊은이로, 젊은이에서 아이로 되돌아가는 생애입니다.“
-p.76
”하지만.... 그대의 말은 언제나 그랬소. 미래는 정해져 있다. 역사는 쓰인 그대로 흐른다.... 그렇다면 대체 그대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오?“
-p.115
한 인간의 역주행 인생을 통해 작가는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폼을 잡으려나 했는데 이 예상을 깨부수며 사건과 인물을 주무르며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묘한 카타르시스로 향합니다. 그렇게 통속소설로 세상을, 시간을, 역사를 조금은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슬쩍슬쩍 건네는 말 뽄새가 또 촌철살인입니다. 첫 장편이라는 기세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내내 이어지는 느낌이 신선했습니다.
“미래란 결정되어 있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밝혀진지 오래다. 그럼 자유의지란 허상인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과거에 난 내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선택을 했고, 현재가 바로 그 선택에 의해 형성된 미래이다.”
-p.241
지금 이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책을 읽도록 과거의 누군가가 한 작은 결정들이 지금이라는 미래의 이 순간을 결정내렸으려나, 하는 어쭙잖은 상상을 하노라니, 폭염이 온천지에 확산한 좀비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을 무기력과 민감함으로 손선풍기와 에어컨의 노예처럼 만들어버린 작금의 현실은 또 어쩌면…
“그리고 마침내 선지자는 어머니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p.376
#엔트로피아 #김필산 #허블
#도서제공 #서평단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