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저는 마감 임박의 쫄림이 주는 고효율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마약같은 고효율이 칠, 팔할의 경험치로 나이테처럼 몸이 기억하는바 쉽사리 그 유혹을, 혹은 게으름의 방치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마감이 연중 지속된다면, 그 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라면? 제게 신앙과도 같은 이 고효율 맹신은 아마도 처절하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질 것임에 분명합니다. 매주가, 매일이, 매순간이 마감으로 점철된 인생을 통과해낸 작가의 글은 그래서, 마감의 고효율 신봉자인 제게는 사이비 교리이자 외경같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MBC <시선집중>와 JTBC <뉴스룸>을 거치며 손석희와 함께 했고, KBS <뉴스9>로 이소정과 함께 하며 그야말로 시지프스의 무한궤도를 살아낸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전쟁과도 같았던 연중마감, 글쓰기의 안팎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품은 6개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장과 1개의 ‘비법전수’의 장으로 풀어냈습니다.
1.오늘도 씁니다.
2.채워야 씁니다.
3.한 발 더 다가가 씁니다.
4.처음이지만 씁니다.
5.내성적이어도 씁니다.
6.오래 달리듯 씁니다.
7.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수업
그러니까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제법 쏠쏠한 전략집이자 쉐도우 복싱용 시뮬레이터 정도가 될 듯 합니다. 물론 방송의 찐 뒷담화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역사적으로 내내 중요하게 회자될 그때그시절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작가의 생생한 무용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논픽션 르뽀르따주에 다름 아닌 숨가쁜 문장들의 파도에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하루 반짝 잘 쓰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매일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 좀 못 썼다고, 주눅 들지 않아야 내일도 쓸 수 있다.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원고료를 떠올린다. 속물 같아 보이지만 살아보니 돈만큼 힘을 주는 것도 없더라.”
-p.69, ‘1장.연중무휴, 오늘도 씁니다’ 中
아멘!
정말 많은 문장가들과 글쓰기 노동자들의 간증에서 무한 반복되는,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임을 이 책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마주합니다. 이는 비단 글쓰기 뿐만 아니라, 선택된 여러 삶의 방도에서 허덕이고 고민하는 무수한 이들의 꼬깃꼬깃 접어둔 안주머니 속 숨겨둔 배수진이자 자양강장제이지 싶습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오늘 좀 못 썼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거나, 무시당했다 해도 잊는다. 복잡한 감정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곱씹을수록 나만 무너지고 상처 입는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뒤에 내일 또 시도하면 된다. 쓰는 사람, 쓰려는 사람은 모두가 훌륭하다.”
-p.261, ‘연중마감, 오래 달리듯 씁니다’ 中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채워야 한 발 더 다다가 처음이지만 내성적이지만 오래 달리듯 쓰고 또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 수 있습니다. 살면 살아진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써내려간 대본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도, 이런 안팎의 담담하면서도 뜨거운 이야기도 계속 보고 읽고 싶어지게 하는, 김현정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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