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누군가 웃고 있다면, 그는 보통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다. 충분히 크게 화내도 되는데 대신 돌려 말하고 있거나 웃으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위계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인 삶 또한 바로 그 웃는 사람이다.”
-p.21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中
학창시절에 반장을 도맡아 하고 교내 성적도 나쁘지 않은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이들을 몰고 다녔고 운동도 꽤나 잘해서 선망의 대상이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지금 말로 인싸 친구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친구를 포함하는 이너써클에 들어가려고 부단히도 노력했고 그렇게 써클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도하며 뿌듯해하기 까지 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그 이너써클들과도 친분이 있었고 그 밖의 아이들과도 교유가 있던 경계에 서있는 포지션을 멋지다 여기며 즐기는 치 였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듣게된 그 인싸 친구의 재미있는 이야기의 패턴을 알아내고는 치를 떨며 격분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너 서클에 있는 친구들을 몇몇을 돌아가면서 유머의 재료로 삼는 못된 유머였습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억지 웃음의 대열에 어느 누구하나 없이 동참하는 꼴에 치가 떨렸던 기억입니다. 그야 말로 ‘불리한 입장’과 ‘낮은 위계’에 있는 아이들이었던 걸테지요.
이 책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은 비평가가 자기 스스로와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대상으로 비평하는, 나름 자전적 비평을 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제게도 일상다반사 같은 일들에 대해 스스로 놓치거나 무시했던 타이밍을 절묘한 언어로 펼쳐보이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 장면들을 책의 이곳 저곳에서 마주하게 되면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끙 하며 왜 그때 나는 그렇게 대처하지 못했지 하게 되는 ‘공감’의 멈춤을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사람과 그 관계에 대해, 사건과 대응에 대해, 그리고 이런 저런 사물들에 대해.
“관둬버린 관계에서 갈구했던 것이 타인을 비춰 자신을 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좀 더 나은 쪽으로 달라질 수도 있으리란 기대를 완전히 거두지 않는 것이 내게 가장 필요했던 ‘도래’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p.192 <견디다>中
“힘을 주는 일보다 힘을 빼는 일이 더 어렵다. 여러 번 하다 보면 힘 빼기를 해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힘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p.227 <스탬프 찍는 기분>中
글쓰기 그리고 독서는 어쩌면 동시대를 비슷한 감정과 상태로 살아가는 또다른 나를 찾아내게 하는 부표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또다른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과 그 신호를 용케 알아차리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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