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금박 틀 안의 그 저주스러운 존재를 향해 손가락을 뻗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손가락을 뻗어 그 반짝이는 유리의 차갑고 딱딱한 표면을 건드렸던 때부터.”
- p.17 <외부자> 中
이 무슨 극도로 감각적이면서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불가해한 문장들의 향연이란 말인가? 다시 마주한 러브크래프트의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살풍경들은 빛의 반사해서 독자의 수정체를 통과해서 망막에 상이 맺히고, 그 내용의 언어적 의미가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프로젝션되어 3D를 넘어 4D의 영상과 감각으로 재편집되는 데에 까지 이르러서야 제대로 러브크래프트를 읽어낸다고 해야 한다는, 감히 신념이라 부를만한 꿈틀거리는 에너지의 변환을 경험하는 체험적 독서다 싶습니다.
이 책의 첫 작품인 <외부자>는 어떤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 듯 무언가를 찾아 기어오르는 그 상황과 나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임에도 그 여운은 꽤나 깊고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하게 가늠할 수 없는 대상이 무작정 이야기를 마칠 수만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얼얼함, 제가 남겨진 느낌은 이 정도로 표현될 만 했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공간-나의 반복된 꿈에서 그처럼 끔찍하게 예시된 공간-의 소름 끼치는 비밀을 조금이나마 어느 정도 알게 되자 우리는 절벽으로부터 그 어떤 빛도 파고들 수 없는 암흑 동굴의 끝없는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걸어온 얼마 안 되는 거리 너머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지옥 세계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p.46 <벽 속의 쥐들> 中
“내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일은, 인간이 머릿속의 모든 내용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한대의 검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지라는 평화로운 섬에 살고 있고, 멀리 여행하지 못할 운명이다. 다양한 과학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분절된 지식이 한데 묶이면서 현실에 관한 너무도 두려운 전망과 현실 속에 있는 우리의 끔찍한 위치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계시로 인해 미치거나, 혹은 그 치명적인 빛을 피해 평화와 안전을 찾아 새로운 암흑시대로 도망칠 것이다.”
- p.50~51 <크툴루의 부름> 中
<벽 속의 쥐들>과 <크툴루의 부름>에서 만난 이 문장들이 어쩌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느낌 혹은 갈피를 잡는 단서가 될 만 하다 싶었습니다.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 굉장히 익숙한 문장들의 조합으로 보여주는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감각적 구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코즈믹 호러의 절단면이 되어줄 듯 합니다. 다른 말로는 ‘러브크래프티안 호러’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 접착식 밴드를 대일밴드, 액상 소화제를 활명수, 접착식 메모지를 포스트잇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이 분야의 시초 혹은 대명사의 고유명사가 일반명사화된 것과 같은 이치가 되겠습니다.
이렇듯, 전혀 무해한 듯한 단어와 문장이 독자를 이끌어 무지의 심연이나 바닥 모를 동굴의 저 끝단까지 도착시키는, 아름답기까지 한 두려움의 증폭, 그 향연 말입니다. 그야말로 입은 벌리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지옥, 바로 그곳이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다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들, 개인적으로 만났던,은 큰 틀에서 성경의 계시록이나 예언서들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100여 년 전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그 당시는 그 당시의 눈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방식의 시선으로 그 작품들이 펼쳐보이는 이야기를 이해할 공간적 틈을 부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틈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 어찌해야할지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버린 그 무기력함이 끼얹어진 채로 독자는 그저 그가 펼쳐보이는 그 이야기 속을 그저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이미 예정된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 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외치고 또 경고하는 그 이야기 속으로 그렇게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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