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에게 글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전략적 메시지로서의 글의 유용함과, 또 글이라는 막연함에 대한 고민과, 글이라는 도구를 계속 써나갈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 p.11 ‘들어가는 글’ 中
이 책은 직업에세이. 현직 카피라이터가 자신의 직업 입문기에서부터 직업의 안팎을 담담하지만 꼼꼼하게 소개하는 책이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전하는 격려와 동병상련의 공감을 담은 책이며, 앞으로 카피라이터가 되길 꿈꾸는 이들이나 현재 그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유하는 실질적 팁까지 담고 있는, 욕심 많은 책입니다. 한편으론 작가 본인의 포트폴리오, 이력서, 자기소개서이기도 합니다.
“온 세상이 남의 약점을 잡느라 바쁘고 단점을 숨기기에 바쁜데, 장점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일을 한다는 것은 꽤 낭만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주 감동하고, 자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습관이 된 건 덤입니다.”
- p.21
“하지만 이젠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 회사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날씨에 내 상태를 맡겨버리면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죠.”
- p.95
“반짝이는 결과는 찰나일 뿐, 창의력을 요하는 이 직업은 지루한 반보과 끝없는 고민이 99%를 차지합니다.”
- p.97
“오래 일하기 위해 필요한 건 쓰러지지 않는 마음이 아닌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일은 언제나 우리를 쓰러지게 만들 테니까요.”
- p.102
책을 읽어가노라면 밑줄 칠 문장들이 제법 많이 등장합니다. 엉뚱한 감성에서부터, 단순한 이유들과, 누군가와의 소통에 더없이 중요한 금언이 될 문장들 말입니다. 역시 글을 쓰고 말을 다루는 작가다운 가지런하고 분명한 의도와 문장들이 독서하는 눈과 머리에 걸림 없이 잘도 지나가고 마음 한켠에 쌓이곤 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느슨하지만 3부로 나눠져 있고, 각각 카피라이터의 일에 대해, 작가 자신이 지나온 일과 직장에 대해, 그리고 카피라이터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담아내고 있습니다. ‘느슨하지만’을 굳이 넣은 이유는, 세가지 이야기가 각 부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느슨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데, 아마도 그저 딱딱한 업무 인수인계나 자기개발의 목적이 아닌, 그저 사는 일, 하는 일을 들려주는(!) 방식이기 때문 일겁니다.
“이 혼란스러움의 구덩이 한가운데서 저는 가능성이라는 다리를 놓고 카피라이터라는 내 정체성을 지키면서 혼란한 시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 p.90
작가는 자신의 일 혹은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 자체가 보여 지는 것 이외의 다양한 분야와 걸쳐있음을 알려주면서 길어진 기대수명과 비례해서 몸담을 직장이라는 틀거리의 확장을 꾀하는 바, 일이 정체성이 되게 하는 태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일 연령의 구분이 변화하고 있으며 정년 연장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금전적인 이유 외에 삶을 영위하는 것에서 일은 정체성이라 여겨질 만큼 지분이 커져만 가고 있음 일겁니다.
특히 3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직장인생 초보들이나 한 두 번의 번아웃을 경험한 이들에게 적절한 보약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노회한 제 입장에서는 그저 귀여운 대리급 직원이 신입들에게 들려주는 술자리 조언 같기도 해서 귀엽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선명한 그 시절에 서 있던 저 스스로의 모습들을 돌아보게도 해서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작가 스스로 터득한 비법들(?)을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면 이 책은 마무리됩니다. 옳고 그른 선택이 아닌, 스스로 옳게 만들 선택만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죽은 물고기만이 물의 흐름을 좇는다는 독일의 속담처럼,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선 변하지 않을 소중한 것들을 붙잡고 스스로의 항해를 시작해보는 겁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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