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왔던 작가의 소설집 <옆집의 영희 씨>에 있던 10편의 단편에, <교실 맨 앞줄>, <계단>, <발견자들>, <스마트워치>를 추가해서 14편의 단편을 엮어서, ‘낯선 세계의 오래된 사랑’과 ‘아득한 어둠 저편의 아름다움’의 두 개의 장으로 나눠 담았습니다.
“나는 일흔네 번째 세계에서 앨리스 셸던 부인을 만났다.”
- p.11 <앨리스와의 티타임> 中
설정과 캐릭터들을 조금 가리고 나면, 정소연의 단편들은 과연 SF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살가운 면이 다분한 이야기들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앨리스와의 티타임>의 첫 문장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투로 멀티유니버스를 쓰윽 끌어와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가 하면, 이웃에 외계인이 살거나, 육체적 장애가 바둑 이야기로 치환되기도 하면서 현재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과 사건 속에서 또 천연덕스런 상상력으로 과하지 않게 지금의 우리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공익 인권변호사라는 작가의 부캐(?)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를, 소설들 여기저기에 뭍어있는 공공선이랄지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 등을 문득 떠올리게 하는 따스함은 그래서 더욱 SF소설이지만 SF소설 같지 않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두 외계인의 얼굴을 응시하며, 수십만 하루가 지나도록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감정에 대해, 수백만 명에게 총을 겨누고 온 땅을 피로 적신 다음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내내 조금도 변하지 않을 아이 하나를 거두겠다는 외계의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 p.221 <입적> 中
“내가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렸던 귓등의 상처는 역사적인 폭발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지 못한 가족과의 연결고리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제 습관이 된 대로 귓등을 만지작거렸다. 사라지지 않은 그 흉터 뒤에는, 나는 잊어버렸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던 과거가 있었다.”
- p.243 <귀가> 中
이토록 살가운 SF소설이라니, 단편집이지만 다음 소설로 쉬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동심원의 파문들이 자꾸만 마음 한켠에서 일렁이게만 하는 이야기들 앞에선 그렇게 속수무책이 되고야 말게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소설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끝까지 읽어내게 하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 이 분류의 틀거리에는 장편, 단편의 물리적 분량과 무관하게 동일 적용됩니다.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5-600 페이지의 장편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탄탄한 구성과 이를 쌓아가는 문장들의 힘에 이끌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50페이지 미만의 단편소설임에도 그저 그런 엉성한 구성과 이도저도 아닌 문장들에 휘둘리다 몇 번이고 쉬었다가 겨우 끝내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소연 작가의 이야기는 그렇게 제겐 끝까지 읽어내게 하는 분명한 힘을 보유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소설집의 마지막에 얹어두신, “소설이라는이 배가 당신과 나 사이의 긴 항해를 버틸 만큼 튼튼하기를, 시공간을 넘어 언젠가 결국은 당신에게 도달하기를” 바랐던 정소연 작가의 바람은 저에게는 그렇게 안전히, 마침내 도달했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데뷔 20주년이 되는 2025년에 나머지 단편들을 엮은 소설집 <미정의 상자>를 조금 조바심 내면서 기다리겠노라 답하고만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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