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포장을 열어서 책을 꺼내드는 순간 깜짝 놀라서 그만 책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이토록 순수한 핑크라니! 그리고 사진 가득 핑크핑크에 핑크 원피스를 입고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까지, 순간 소.오.름.
이번 이슈의 주제어는 다름 아닌 ‘꾸꾸꾸’. ‘꾸안꾸’는 아는데 ‘꾸꾸꾸’는 생소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꾸며서 꾸밈의 최선을 다하는 어느 지점일거라 예상했고, 그것이 ‘꾸미고 꾸미고 꾸민’, 즉 한껏 힘 줘서 스타일링을 했다는 의미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꾸며도 꾸질꾸질’이라는 의견도 있던데, 이건 ‘억까’의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뭐 의견은 의견인 것이고, 언어는 언제고 변신하고 탈피하며 변질되곤 하니 지켜볼 일이다 싶습니다.
“튜닝의 끝이 순정인 것처럼 사실 꾸밈의 최종 보스는 비움이 아닐까. 맥시멀리스트의 끝은 미니멀리스트 아닐까.”
- p.003, editor’s note 中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글로벌 1위까지 찍었다는 <흑백요리사:요리 계금 전쟁>의 4회에 등장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한식대가 이영숙과 장사천재 조사장과의 대결.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언급되는 ‘덜어 냄의 미학’이 이번 이슈의 ‘꾸꾸꾸’와 묘하게 겹쳐져서 일겁니다.
“무지개색을 앞세우는 퀴어축제가 열리는 시대에도 여전희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라는 컬러 코드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젠더플루이더와 팬젠더가 거론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성별 이분법은 우리의 삶을 집요하고도 촘촘하게 지배한다는 현실을 말이다.”
- p.067, cover story 中
매 이슈가 보여주었듯, 큐레이팅된 review, chat, issue, essay, key-word, short story, novel 각 꼭지들은 읽기의 즐거움으로 꾸꾸꾸 되어있었고, 특별히 cover story는 책 전체의 컬러 안배가 주는 즐거움을 포함해서 이번 이슈를 관통하는, 어쩌면 의외의 이야기인 비움과 젠더 이분법을 꺼내 놓으며 외연과 내연을 채워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역시나, 당연하게도 정기간행물의 참재미, 김숨, 전예진, 권혜영, 이서수, 김나현 작가의 연재소설들은 아껴가며 읽게 되는 오아시스랍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도 이제 가고 짧을 것이 분명한 가을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에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가을 공기를 가득 채우고 생각을 다시 비워내고 나면 하이얀 겨울이 성큼 도착해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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