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d님의 서재
  •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 김이듬
  • 10,800원 (10%600)
  • 2024-12-20
  • : 11,075

마음의 시린 부분에 바람이 닿는데 동시에 포근하게 데워주는 것 같다.

시집 너무 좋았다.


마지막 장 덮고서 내 안에서 혼자 소화하는 며칠을 보내고

MD님이 쓴 편집장의 선택 글을 봤는데 이 부분이 내 맘 같아 반갑고 너무 좋았다.


(...)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이 시들은 내게 위로가 됐다. 북극한파를 맞이해 눈보라 내리는 빙판길을 걸으면서 이들은 이 막무가내인 삶을 묵묵히 걸어나간다. '스스로 만든 손목 흉터 가리려고 소매 잡아 늘리는'(<나의 정원에는 불타는 나무가 있었고>) 사람이 자꾸 흉한 일이 생기는 친구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부적 팔찌를 사주려는 순간, 인사동 골목길에 나란히 선 흉진 사람들의 마음이 연결된다. 책방을 잃고 엄마를 잃고 몸을 잃어도 밤은 찾아오고 밤이라면 명작을 쓸 수 있다. 막막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밤이 긴 이 겨울 읽기 좋은 시집이다.


낮이 짧은 계절은 기분을 가라앉힌다 생각했는데

밤이 긴 게 좋아질 줄이야. 이제 밤도 좋다.

내 맘에도 명작이 새겨지는 밤이었다.




유리병 들고
무릎 꿇고
심장을 기울인다

벌꿀은 별로 흐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둥근 덩어리로 뭉쳐져
유연하게 흘러내리지 않는다

왈칵 쏟아진다

줄곧 함구하고 있던 사람의 말처럼
용케 참고 있던 눈물처럼

엉겨 떨어지지 않던 수만 가지 기분은
꿀처럼 점성력을 가지고 있다

바닥에 황금빛으로 번지는 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P59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