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본인이 운동 신경은 없지만 장거리를 달리는 끈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런 끈기 때문에 지금껏 작가로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아, 정정. 끈기'도' 가졌기에 작가로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작가가 되는 데에는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된다.'.셰익스피어나, 디킨스나, 발자크처럼 마르지 않은 재능을 가진 소수의 '거장'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하루키가 택한 '근력을 쌓는 방법' 이 바로 달리기다. 하루키가 워낙 달리기 얘기를 많이, 자주 해서, 또 이런 식의 재능'론'에 대해 하도 써서, 달리기를 축으로 한 그의 회고록은 새롭다기보다 '으으음, 역시 그러셨군요.'라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 것은 최근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살이 부쩍 쪘다. 체력은 원래도 '없다'고 해도 좋은 정도였지만 무릎이 뻐근함을 느꼈을 때에는 제법 위기 의식을 느꼈다. 미적인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달리기.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달리기엔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 하지만 가볍고 쿠션이 좋은 운동화는 새로 샀다. 달리기를 관둬도 그냥 신고 다녀도 되니까. 나이키에서 나온 암월렛running arm wallet(세상엔 온갖 것이 있다)이란 것도 샀다. 이건 달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겠지만, 이정도 투자쯤은. 어흠.
새 운동화를 신고, mp3에 적당한 음악을 넣고(자미로콰이 노래 중 템포가 빠른 것들이 제법 좋다. (Don't) Give a hate chance 같은 것), GPS로 내가 달린 거리를 측정하는 어플을 켜고 달린다...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하루에 30분 정도, 1/3은 걷고, 2/3은 뛰는 아주 얄팍한 달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에 '그렇군.'하고 생각했던 구절들은 '그렇군!'으로 바뀌었다. (아는 만큼, 내지는 경험한 만큼 보인다는 뻔한 교훈의 재확인. 아참, 변명을 덧붙이자면 뛰기로 결심한 그 한바퀴만은 절대 걷지 않기로 결심했고, 지금껏 잘 지켜 왔다.남이 보기엔 거의 걷기처럼 보이는 속도일지라도.)
나로 말하자면, 운동 신경도 없고, 끈기도 부족하다. 체력도 저질. 학교 다닐 때는 달리기가 죽도록 싫었다. 땅! 하는 순간에 친구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고, 혼자 뒤에서 달려가는 게 싫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도 혼자 헉헉거리며 뛰는 게 싫었다. 그래서 요즘의 혼자 하는 달리기는 나쁘지 않다. 아무리 뛰어도 혼자 뒤쳐질 일은 없다. 땅을 박차는 느낌은 제법 좋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좋고, 달리고 나서 한껏 달아오른 몸을 찬물로 식히는 느낌도 좋다. 그래도 힘들다! 숨은 턱까지 차고, 귓속까지 땀으로 축축해진다. 그러면 뭐 어떤가. 원래 달리기란 행위는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 성격에 맞다고 해도 역시 '오늘은 몸이 무겁다. 어떤지 달리고 싶지 않은데'라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니,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여러 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서 달리기를 쉬고 싶어진다. 올림픽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S&B팀의 감독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나. 그때 나는 "세코 씨 같은 레벨의 마라토너도 '오늘은 어쩐지 달리고 싶지 않구나. 아, 싫다. 오늘은 그만둬야지. 집에서 이대로 잠이나 자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해보았다. 세코 씨는 말 그대로 눈을 크게 뜨고는,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거야'라는 어조로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75p
힘들다. 오늘은 건너 뛸까. 아, 아침에 운동하고 출근하면 지하철 안에서까지 얼굴이 후끈후끈한데, 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일째(작심삼일이 취미인 나로서는 굉장한 일이다. 조금 으쓱거려도 되겠지.) 달리기를 한 것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쉬워졌고(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한 바퀴를 뛰었을 때 '아, 이 정도면 한 바퀴 더 달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실제로 그게 가능함을 알았을 때의 즐거움이 있어서다. 천년만년 살 생각은 없지만(살고 싶지도 않다.) 건강해 지고 싶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해 보고 싶다. 매일매일의 거리, 그리고 지속 기간을 어디까지 늘릴 수 있을까.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하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127,128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