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폭력과 철학의 제문제들...
shinnyy 2007/01/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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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와 다름없다. 전쟁과 평화라는 상반된 가치는 인류에게 방학 중 일기숙제처럼 영원히 미뤄진 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50여년간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은 한반도의 평화가 한민족에게는 가장 긴 평화(?)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날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만큼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그 폭력의 판단 기준을 선과 악으로 들이대거나 원인을 규명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 인간은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론의 1차적 욕구는 생리적 욕구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전쟁과 폭력은 이러한 1차적 욕구를 성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라는 물음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니면, 마지막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폭력의 문제는 국가의 존립을 위한 몸부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세의 봉건적 가치를 고집하는 수구세력의 목숨을 건 저항은 결국 나라를 말아 먹었다. 근대화의 기로에 선 조선은 대한민국이라는 제국주의를 선택했으나 일본에 의해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벌어지는 독립 운동과 일본의 패망에 의한 광복은 초유의 이념대립에 의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 결국 친일 잔재 청산은 21세기에도 요원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박정희로 이어지는 현대사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이 폭력의 시대를 넘어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는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답변일 뿐인가?
도올이 말하는 폭력의 세기와 논술의 세기에 동의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 <책문>으로부터 논술의 역사를 찾고 있는 도올의 논술에 대한 거대 담론은 시대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거시적 안목으로 비쳐지지만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의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EBS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 강의를 하고 있는 도올은 <논술과 철학강의>라는 책을 통해 강의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두 권의 책 중 1권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폭력’의 문제와 관련시켜 살펴보는 1부와 철학의 제문제들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들을 짚어보는 2부는 가독성이 탁월하다. 고등학생들에게 강의하듯 막힘없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서문의 내용이 무색하다. 3부는 문장론이다. 수많은 책을 쓰면서 대표적인 저술가답게, 개인 출판사를 운영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도올의 문장론은 수준 이하이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중언부언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1, 2에서 보여준 도올 특유의 입담과 일관성 있는 시선은 한국 현대사와 철학의 제문제에 대한 명쾌한 설명으로 읽을만하다. 특히 맨땅에 헤딩하는 논술 세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권해줄 만한 책이다. 바야흐로 ‘논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문학이나 한국 문학을 출판하는 모든 출판사와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책들의 앞, 뒤에 ‘논술’이라는 수식어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논술에 대한 집착은 그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초등학생부터, 아니 취학 전 아동부터 시작되는 논술에 대한 광풍이 염려스럽다. 학교교육의 방법과 틀이 바뀌지 않은 채 논술에 대한 관심과 열의만 증폭되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기만 하다.
도올은 책 말미에서 2006년을 시대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침묵의 시기로 규정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논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 두 권으로 논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유의 틀과 세상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로 잡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하다. 도올 특유의 자뻑멘트가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우리말 문장과 한글 전용에 대한 주관적 아집이 보이기도 하지만 귀엽게 봐준다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다.
대학 입시와 직결된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이 대입 논술을 위해 도움이 될만한가라는 질문에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2008학년도 대입부터 시행되는 통합 논술의 예시들은 도올의 지적대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빼앗기거나 잘못된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실전과 훈련을 일치 시켜야하는 현실에서 본다면 부적당한 교재다. 하지만 넓고 깊은 의미에서 궁극적인 논술의 목적을 실현해야 한다면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없다. 잡다한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창조적인 사유 방식들을 다듬어 나가기 위한 방편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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